「동아시아는 칠레로부터 위기해법을 배워라」동아시아 금융위기의 불길이 잡히지 않는 가운데 칠레에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남미경제의 모범생이라는 칭송을 듣지만 80년대초엔 작금의 동아시아와 처지가 비슷했기 때문이다.
80년대초 칠레의 위기는 멕시코처럼 공공부문의 재정파탄이 아닌 민간부문의 과도한 외채가 주범이었다. 정부가 이를 떠안게 된 것도 국제통화기금(IMF)구제금융이후 동아시아 각국이 민간부채를 국채로 전환하려는 움직임과 흡사하다.
당시 칠레 정부는 자본자유화 등 강력한 개방정책을 폈다. 덩달아 민간은행들과 기업들도 해외에서 무차별로 단기외채를 끌어다 썼다. 그러나 주력수출품인 동값이 떨어지고 버팀목이던 고정환율제가 흔들리자 통화가 폭락했다. 순식간에 핫머니(단기투기자본)가 썰물처럼 빠져 나갔고 빚더미에 눌린 금융기관과 기업들은 잇따라 쓰러졌다. 82년 국내총생산(GDP)이 전년도에 비해 15%나 추락하는 대재앙이 일어났다.
칠레 정부는 GDP의 20%를 차지하는 금융부문에 철저한 메스를 가했다. 먼저 엄격한 감독규정으로 은행들을 틀어쥐었다. 86년 은행법에 따라 독립된 은행감독기구를 설립, 은행들이 기업이나 다른 은행주식의 소유를 금지시켜 공룡화를 막는 한편, 외국지점의 개설도 중지시켰다. 외채의 미스매치(단기채와 장기채의 상환 불일치)가 일어나지 않도록 기간별로 조건을 붙여 관리했다.
이런 바탕위에서 핫머니에 대한 안전판이 세워졌다. 장·단기를 불문하고 해외차입의 30%를 중앙은행에 1년간 무이자로 예치토록 했다. 외국인 직접투자는 중앙은행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핫머니와 투자자본을 확실히 구별한 것이다. 이어 수출확대정책과 함께 공공부문의 재정흑자를 통해 가용외환보유고를 늘렸다. 흑자규모를 GDP의 1∼3%로 유지, 그 양만큼 고이율의 국·공채를 국내시장에서 발행, 외국돈을 끌어들인 것이다.
물론 이런 조치들은 민간기업의 외채조달을 규제하지 않아 한계가 있었지만 큰 결실로 이어졌다. 칠레경제가 90년대들어 환율안정에 힙입어 두자릿수의 수출증가와 연 6%의 견실한 성장을 이룩하는데 밑거름이 됐다.<박진용 기자>박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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