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은 개로 토끼를 잡고, 아첨꾼은 칭찬으로 우둔한 자를 사냥한다」 소크라테스의 깨우침이다.중국 후한의 애제는 정사에는 관심이 없고 놀기만 좋아했다. 충신 정숭이 이를 간하자 처음 몇번 듣는 체 하다가 차츰 그를 멀리했다. 온갖 아유의 말로 임금의 총애를 얻은 간신 하나가 그를 모함했다. 그는 정숭이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것을 평소 시기하고 있었다. 애제는 정숭을 잡아들여 문초했다.
『너의 집 문 앞이 저잣거리와 같다지?』
『신의 집에 아첨하는 무리가 모여드는 것은 사실이오나 신의 마음은 물처럼 맑습니다』
그러나 애제는 용서없이 매를 때려 그를 하옥했다. 정숭은 감옥 안에서 죽고 말았다. 충신은 없고 간신만 들끓게 된 후한도 얼마 못가 멸망했다. 고사성어 「문전성시」의 유래다.
「김대중 대통령당선자가…」 라고 글을 시작하려다 보니 이 호칭이 적당한 것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럽다. 「김대중 차기대통령」이라고 적는 신문도 있다. 「차기대통령당선자 김대중씨」는 어떨까. 아니지, 취임 전이니 그냥 「김대중 선생」이라고 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DJ」라는 애칭이나 「후광」같은 별호도 있기는 하지만, 갑자기 「후광선생」이라고 부르는 것도 어딘지 낯설다. 곧 국가원수가 될 사람에게 예가 아닐 수도 있겠으나, 아무래도 여기서는 그냥 「김대중씨」라고 해 두는 것이 무난할 듯 싶다.
호칭을 가지고 뭘 그렇게 까지 잔 신경을 쓰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사람들을 이렇게 망설이게 하고 있는 장본인은 바로 김대중씨 자신이다.
김씨는 얼마전 대통령직 인수위로부터 첫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문체부가 취임기념공연으로 「여민락」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자 이를 취소토록 지시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 조선시대 아악곡은 세종때 「용비어천가」에서 일부를 따다 구성한 가사에 곡을 붙여 만든 것이다. 나라가 시련을 겪다가 백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성군을 만나 태평성대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당사자로서는 낯 간지러운 일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내친 김에 김씨는 행정관서 사무실에 대통령 사진을 액자에 넣어 거는 일도 그만두고, 「각하」라는 호칭도 안 쓰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텔레비전과 신문에서 매일 보는 대통령 사진을 굳이 동사무소 같은 일선 행정기관까지 모두 걸어 둘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주변 인사들의 해석은 이렇다. 『대통령은 존경 받아야 하지만 지나치게 권위와 위엄을 내세워서는 곤란하다. 그는 탈권위주의의 새 리더십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곤란하게 된 쪽은 공무원들이다. 「각하」 말고 그럼 이제부터는 뭐라고 해야 할 것인가. 그냥 「김대중대통령」이라고 막 부르자니 이상하고. 큰 고민거리가 하나 새로 생긴 셈이다.
김씨 주변인사들은 또 김씨가 당선된 직후 언론이 그를 대대적으로 특집보도하자 「신판 용비어천가」라면서 가감없이 객관적 사실에 충실한 보도를 주문하기도 했다. 이제까지 김씨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보도자세를 보이던 언론기관이 하루아침에 정반대로 태도를 바꾸는 모양이 속으로 삭이기 어려웠을 법도 하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그들의 생각처럼 「새 권력자에게 아부하려는 비민주적 습성」이라고 면박 줄 일만은 아니다. 50%가 못되는 지지표로 당선된 대통령도 당선 후 얼마동안은 70∼80%의 높은 인기를 누리게 마련이다. 그것은 당선자 개인이 특별히 좋아서라기 보다는 새 대통령이 성공적인 대통령이기를 바라는 국민의 기대가 그렇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나라가 어려울 때일수록 정치지도자는 국민의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고, 크게 싸 안을 수 있어야 한다. 단결된 힘은 거기서 나온다. 과공은 비례임이 분명하고, 경계해야 마땅한 일이지만, 그것은 그런 줄 알고 자계하면 되는 것이다. 무안을 주어 인심을 이반하게 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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