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렘린의 붉은 광장을 내려다보고 서있는 호텔 로시아의 예브게니 침발리스토프(49)사장이 9일 아침 아파트 계단에서 살해됐다. 새해 첫 대형 청부살인 사건이다. 주요 일간지에 「사건」면이 있을 정도로 각종 범죄가 잇따르는 러시아이지만 새해 벽두에 터진 이 사건은 마피아의 존재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기에 부족함이 없다.러시아하면 많은 사람들은 마피아를 떠올린다. 화려한 볼쇼이 발레나 크렘린, 영원한 고전으로 꼽히는 「전쟁과 평화」보다는 팔등신 미녀, 보드카와 함께 마피아가 더 뇌리에 박혀있다. 하지만 러시아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마피아에게 피해를 본 것은 오래전의 일이다. 러시아 마피아도 이제 미국의 마피아나 일본의 야쿠자등과 마찬가지로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민간인을 더 이상 공격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외국인이 피해를 보는 경우 어떤 식으로든 마피아와 관계를 맺고 사업을 벌이다 보복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러시아에 거주하는 「보통 외국인」이 정말 두려워하는 존재는 골목 불량배다. 유학생들이 스킨헤드족에게 폭행당하는 것을 제외하면 밤늦은 시각 어두운 지하도에서, 아파트앞 공터에서, 불없는 아파트 계단에서 지갑을 빼앗고 폭행을 가하는 검은 세력은 동네 「조막손」들이다. 이들은 아직 가치관이 채 정립되지 않은 10대 청소년으로 시장경제 도입에 따라 일찍부터 「돈 맛」을 알게된 신세대다. 80년대 말 구소련에 진출한 「펩시콜라」를 마시고 자라서 「펩시세대」로 불리기도 한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범죄조직 단원을 유망 직업으로 꼽는 10대 젊은이가 2∼3%에 달할 정도이니 「돈 맛」뒤에 숨겨진 정신적 공황상태를 짐작할 만하다.
고금을 막론하고 경제난은 대개 범죄증가라는 사회현상으로 나타난다. 국제통화기금(IMF) 태풍이 몰아치는 우리에게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실직한 부모에게서 용돈을 타낼 수 없게 된 우리 청소년들은 어디서 용돈을 구할까. IMF 합의의 착실한 이행도 중요하지만 이들이 범죄의 수렁에 빠져들지 않도록 꼼꼼이 대비하는 일도 그에 못지않은 사회적 과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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