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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합의 충실히 이행해야(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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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합의 충실히 이행해야(사설)

입력
1998.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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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현대 LG SK 등 4대재벌 총수들이 13일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와 만나 상호지급보증 완전해소 등 5개항에 합의한 것은 당면 위기를 타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전향적 조치로 평가할 만하다.4대재벌 총수들은 이날 합의문에서 「이같은 위기가 초래된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이같이 약속함으로써 향후 투명한 기업풍토 조성과 함께 노사정 대화합의 새 지평을 여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특히 합의사항중 ▲구조조정시 지배주주는 자기재산 제공에 의한 증자 또는 보증 등 자구노력을 경주하고 ▲기업의 경영부실에 대해 경영진 퇴진 등 책임을 강화한다는 부분은 재벌총수들의 위기의식을 반영하는 획기적 내용이어서 그 후속조치가 기대된다.

이번 합의는 비단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 투자가들을 대상으로 한 공개 약속이다. 앞으로 모두를 납득시킬 수 있는 후속조치가 정직하게 실천돼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사실 이날 합의내용중 결합재무제표 도입, 상호지급보증제 해소 등은 이미 수년전부터 학계나 정부당국이 끊임없이 제기해 온 사안들이다. 문민정부의 신경제5개년계획이나 96년 공정거래위원회의 상호지보 폐지방침 파문 등을 통해 수차례 시도됐으나 현실론을 앞세운 재계의 반대에 부딪쳐 번번이 좌절된 내용이다. 따라서 이날 재벌총수들이 대통령당선자와의 회동 형식을 빌려 이를 전격 수용키로 한 것은 차라리 늦었다 싶은 느낌도 없지않다.

캉드쉬 IMF총재가 12일 김당선자를 만나 『한국은 IMF가 오기 전에 먼저 개혁으로 나갔어야 했다』고 밝힌 것도 바로 이날 합의된 「재벌개혁」을 겨냥한 지적에 다름아니다.

그러나 이날 합의를 통해 우리 경제가 뼈를 깎는 고통을 나누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노사 대화합을 확실히 담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아직 미진한 구석이 남아 있다. 지금까지 보여 온 국내 재벌들의 행태에 비춰 불신과 회의를 떨칠 수 없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역대정권 초기에는 풀처럼 고개를 숙이다가 막바지에 가선 세금마저 못 내겠다고 버틸 만큼 「두 얼굴」을 보여 온 게 국내 재벌이었다. 또 부동산 매각, 업종 전문화, 세계화 등 주요 정책변화 때마다 겉으론 쌍수를 들어 반기는 모습을 보이다 몇달 못 가 흐지부지하거나 언제 그랬느냐는 듯 뒷전에서 딴 짓을 한 사례도 한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 근로자들은 임금감축과 무급휴가에 이어 자신이 적립한 퇴직금마저 찾지 못한 채 거리에 나앉게 될지 모를 극한상황에 직면했다. 만약 근로자들이 이날 재벌의 약속에 대해 『결국 할 일을 차일피일 미루다 국난을 당하여 마지못해 수용한 거나 뭐가 다르냐. 우리는 당장 끼니를 걱정할 판이다』며 고개를 흔들 때 노사화합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김당선자측의 분석대로 지금 우리가 70%를 살리기 위해 30%의 희생이 불가피한 처지라면, 그 30%가 참고 기다릴 수 있도록 흔들림없는 믿음을 줘야 한다.

근로자들이 믿고 기다릴 수 있도록 재벌총수들은 자신의 명예로운 퇴진까지도 기꺼이 감수할 각오와 용기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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