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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 더 늦출 수 없다(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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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 더 늦출 수 없다(사설)

입력
1998.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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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가 발생했을 때 응급처치 뒤에는 곧 수술을 서둘러야 한다. 어물어물하다 때를 놓치면 환자는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 수술을 한 뒤 차도를 봐 가며 약을 쓰고 좋은 음식과 영양을 공급하면 상처에 새살이 돋아 환자는 다시 건강한 몸으로 사회로 복귀하게 되는 것이다.우리 경제는 지금 이런 중병 걸린 환자에 비유할 수 있다. 모두가 애를 쓴 보람이 있어 응급상황은 어찌어찌 모면해 가고 있지만, 막상 수술단계에 이르자 수술대상인 재벌이 겁을 먹고 수술대에 오르지 않으려 버티고 있다. 시간을 끌면 고통만 더 심해지고 잘못하면 회복불능의 상태가 될지 모르니, 병을 빨리 고치려면 수술이 빠를수록 좋다고 설득하고 있는데도, 어떻게 수술만은 면해 볼 길이 없을까 헛된 미련을 못 버리고 말을 안 듣는 것이다.

계열사간 상호채무지급보증 해소와 결합재무제표 작성을 근간으로 하는 재벌구조개혁은 바로 중병 든 우리 경제의 병소를 도려내는 일이다. 이 과제는 IMF의 요구가 아니라도 우리가 명실상부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접을 받을 만큼 튼튼하고 성숙한 경제체질을 갖추자면 피할 도리가 없는 핵심사안이다. 그리고 그 일은 빠르면 빠를수록 우리의 고통도 짧은 기간내에 끝낼 수 있다.

개혁작업에 저항하는 재벌기업들의 항변은 이렇다. 상호지급보증을 해소하는 문제만 하더라도, 정부요구를 그대로 따르자면 은행빚을 청산해야 하는데 그 많은 빚을 무슨 수로 그렇게 단기간에 갚겠는가, 그건 바로 그룹의 해산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그러니 시간을 좀 달라는 것이다.

또 있다. 부실한 계열기업을 정리하고 주력업종에 맞추어 그룹을 재편성하고 싶어도 노조 때문에 도무지 일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재벌개혁을 제대로 하려면 정리해고제를 법제화해 고용과 임금책정에 탄력성을 부여하는 일이 선결과제라는 논리다.

그러나 우리 형편은 지금 누가 먼저 수술대에 올라야 하느냐를 따지고 있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 정부·기업·가계가 한덩어리로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해도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인도네시아를 보지 않았는가. 여기서 조금만 삐끗하면 곧바로 파국으로 가게 돼 있다. 경제파탄의 장본인인 재벌이 먼저 살을 잘라 내야 한다. 노조에 정리해고제를 설득할 명분도 그때서야 가능할 것이다. 정치권도 섣부른 보수논리를 내세워 개혁의 발목을 잡아선 안된다. 기득권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다. 경제가 제자리를 찾기까지 잠시 그 주장을 유보해 달라는 것이다.

뉴욕의 한국채권은행단 회의와 미의회의 한국경제 청문회가 코앞에 다가와 있다. 그 전에 우리의 가시적 조치가 보이지 않으면 상황은 더욱 꼬이게 되고 국민이 받을 고통도 더 심화할 것이 뻔하다. 오늘 있을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와 5대 재벌총수들의 만남에서 오직 나라를 위한 큰 결단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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