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통신이 시중에 배포한 서울시 상호편 전화번호부를 펼치면 행정 입법 사법부 등 행정기관에 이어 정부투자기관, 정부재투자기관, 정부재정지원기관, 공공법인체의 명단과 전화번호가 화려하게 진열되어 있다. 정부투자기관 21개, 재투자기관 24개, 재정지원기관 103개, 공공법인체 85개 등 자그마치 233개의 준정부기관 명단이 장장 50쪽을 차지하고 있다.전화번호부 발행인인 한국통신은 정부투자기관이고, 전화번호부 사업을 하는 한국전화번호부(주)는 한국통신이 출자한 정부재투자기관이다. 서울시 전화번호부에는 각종 정부 출연기관, 정부가 사실상의 주인인 금융기관, 마지못해 본사를 지방으로 옮긴 공기업과 자치단체의 각종 기관·단체는 제외되어 있다. 정부는 이 모두를 산하기관·단체로 부르고 있지만 국민이 알고 있는 것은 그 일부에 불과하다.
정부산하 기관들의 인원은 전체 공무원의 절반, 예산은 정부예산의 2배반에 달하고 있다. 이젠 이들에 대한 개혁을 서둘러야 할 시점이다. 특히 새정부 출범에 앞서 정부조직 개혁을 논의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조직보다 적폐가 심하고, 방만한 경영으로 세금을 축내고, 구성원들의 배만 불리고 있는 산하기관에 대한 일대 수술이 필요하다.
이들의 고질적 낭비유형은 매우 다양하다. 사람을 위해 자리를 만드는 위인설관은 초보단계다. 월급뿐 아니라 이름조차 생소한 각종 명목의 고액수당을 받아 챙기는 방만한 조직관리는 이들 단체 모두가 갖고 있는 고전적 해악이다. 여기에 중복투자, 과다한 예산지출, 경비전용, 아무도 검증하지 않고 검증할 수도 없는 접대비와 판공비, 임직원 특혜융자 등 온갖 악성폐단이 망라돼 있다.
그 구체적 실례를 들어보자. 각종 연금과 기금을 관리하는 공단이라는 게 있다. 이름하여 연금관리공단이다. 이 공단도 몇개나 된다. 모두 수조원의 국민 돈을 관리하는 정부 산하기관들이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빈 껍데기만 남아 있고, 흥청망청 낭비된 돈은 세금으로 해결해야 한다.
수익성이 있는 정부투자기관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자회사를 꾸준히 만들어 퇴출후의 자리마련에 급급하다. 포철, 한국통신, 한전 등 독과점 사업으로 수익이 짭짤한 정부산하기관이 자회사를 남발하는 까닭을 조직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이들 조직은 「방만한 경영」의 특성상 조직 부풀리기에 열중해왔다. 김영삼 정부 치하에서 이들은 2∼3배의 조직확충을 도모했고 모두들 성공했다. 따라서 이전부터 정부산하 조직에 대한 통폐합과 과감한 수술이 단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이 주장은 정부 구성원들의 필요성 때문에 항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정부산하 단체가 왜 이렇게 운영되어 왔을까를 깊이 생각하며 방만한 정부산하단체를 내실있는 조직으로 바꿔가야 한다. 그 구체적 방법은 2월이면 국정을 책임질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측의 시급한 과제다. 많은 개혁 과제중에서 전후를 챙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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