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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우선 개혁해야 산다/이영선 연세대 교수(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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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우선 개혁해야 산다/이영선 연세대 교수(아침을 열며)

입력
1998.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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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국경제는 방향을 잃은 난파선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배의 갑판 위에서 선장과 항해사와 기관사가 서로 책임을 따지고 있다. 선장에 해당하는 정부가 먼저 매를 맞았다. 외환보유고가 바닥이 나는 것도 모른 채 경제를 운영해 온 정부 관리들이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다. 책임을 져야할 집권세력이 선거에서 패배하고 새로운 선장이 등장하면서 책임은 기관사인 노동계와 항해사인 기업계에 전가되는 분위기이다.그런데 우리의 과제는 이 경제위기의 책임을 묻는데 있지 않고 어떻게 하면 우리 경제가 난파를 모면하느냐에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산과 수출의 주역인 기업이 제구실을 해야한다. 한국경제가 지금까지 쌓아 온 산업기반이 하루 아침에 무너져 내려서는 아니된다. 엄청난 외채를 갚고 또 우리의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살아 남아야 한다. 그렇다고 지금의 기업구조를 그대로 두고 보호할 수만은 없다. 우리 기업들의 지금의 비효율성과 불투명성을 가지고는 외국투자가들을 유치할 수가 없음이 명백히 드러났다. 외국투자의 유치없이는 우리 경제가 난파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불행하지만 현실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오늘의 경제위기는 정부와 기업이 민주화와 세계화의 시대에 올바로 적응하지 못한데서 야기되었다. 권위주의적이고 폐쇄적인 시대에는 관료에 의해 통제되는 금융을 통해 기업에 자금이 분배될 뿐 아니라 대외적으로 기업이 보호될 수 있었다. 그러한 환경하에서 기업과 금융이 만들어 낸 것이 재벌내 기업간의 상호지급보증이고 이를 통해 기업은 과도한 부채를 안게 되었다. 관치금융과 상호지급보증은 법으로 규정되지 아니한 재벌이라는 일군의 기업집단의 형성을 가능케 하였고 이러한 조직을 활용하여 재벌의 총수가 적은 자본으로 엄청난 자금을 동원할 수 있었다. 또 이러한 막강한 자금 동원능력을 지닌 재벌총수는 기업투자에서 독점적 의사결정권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 경제의 규모가 작고 또 복잡하지 않았을 때에는 이러한 투자결정이 큰 위험성을 갖지 않았으나 이제는 엄청난 위험성을 안게 되었고 또 그것이 오늘의 재벌 비효율성을 야기했다. 뿐만 아니라 상호지급보증은 어느 기업이 어느 정도로 건실한 재무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만들었고 이는 곧 우리 기업의 대외신인도를 크게 떨어뜨렸다.

민주화와 세계화의 시대에 우리 기업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활동의 여건인 법적, 제도적 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지금 제기되는 것이 상호지급보증의 해소이며 또 재벌계열사의 결합재무제표 작성이다.

물론 이 두가지 과제를 단시일 내에 이루기에는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우선 30대 재벌이 자기자본의 약 절반인 33조원의 채무보증을 단시일 내에 해소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채무보증을 해소하기 위해 은행이 신용대출을 급속히 확대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또 결합재무제표의 작성도 과연 어느 회사까지 포함해야 하는지의 까다로운 기술적 문제가 남아있다. 물론 이러한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이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무작정 서두를 일도 아니다. 현실을 고려하면서 기업계와 정부가 공동의 책임의식을 갖고 서로 협조하고 타협하여 해결책을 만들어내야 한다.

기업이 과거의 경영관행을 떨쳐버리고 효율성과 투명성을 제고하는 노력을 보인다면 정부는 재벌에 대한 규제를 과감히 철폐해야 할 것이다. 인위적으로 30대 재벌을 지정하고 이들에 대해서 출자총액을 제한하거나 여러 행정적 제한을 가하는 등의 규제는 폐지될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순수지주회사의 설립도 허용되어야 할 것이다. 재벌이 투명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재벌이 법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재벌이 법적 존재인 지주회사라는 형식으로 기업집단을 형성하여 투명성을 보이면서 아울러 효율적인 기업활동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를 금지할 이유가 없다. 물론 대기업이 독점적 횡포를 보일 염려가 있으나 세계화의 시대에서 이는 개방에 의한 경쟁으로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난파될지도 모르는 배를 타고 가는 우리 온 국민은 지금 불안에 떨고 있다. 정부와 기업계와 노동계가 협조하지 않고서는 이 배의 방향을 바로 잡을 수가 없다. 어느 한 쪽의 이득만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 그러다가는 모두 가라 앉을 판국이다. 정부가 기업을 매도만 할 때도 아니다. 기업이 살아 있어야 개혁도 가능하다. 따라서 기업이 숨돌릴 시간을 가지며 점진적으로 개혁해 나 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기업의 회생가능성과 개혁의지가 보일 때에만 노동계의 협조도 가능할 것이다.<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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