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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인수 조용하게/이병일·수석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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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인수 조용하게/이병일·수석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8.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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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활동을 둘러싸고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사정기관처럼 움직인다거나 나라살림을 살펴서 새대통령의 통치기반을 마련하는 인수위가 아니라 점차 정책제시 및 집행기관이 되어가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권력을 잡으면 휘두르고 싶고, 의욕이 넘쳐 일을 서두르다 보면 자칫 순서를 뒤바꾸는 데서 이같은 일이 발생했다고 할 것이다.「대통령책임제인 한국은 정말 통치하기 쉬울 것 같아요. 대통령의 말 한마디면 순서에 관계없이 일이 척척 진행되니까요. 설령 일을 진행하다가 법의 제약을 받으면 특별법제정이란 무기가 있지 않습니까」 대한국 관계 일을 담당하고 있는 한 일본 공무원의 이야기다.

그의 말은 듣기에 따라서는 불쾌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화만 낼 일도 아니다. 그동안 우리의 일처리 과정을 보면 이를 부인할 수만도 없다. 이에 비해 일본은 지진과 태풍이 많은 불안한 환경 때문인지 너무 절차를 중시하고 이리저리 재는등 굼뜨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어느 쪽이나 일의 진행방법에 장단점이 있다. 양쪽 다 처한 환경과 국민들의 성품에 따른 것이라 어느 쪽이 정석이라고 할 수도 없다. 우리는 일을 빨리 쉽게 이루는 시원스런 면이 있지만 세월이 지나면 손을 많이 보게 된다. 일본의 방식은 더디지만 그 만큼 탄탄하고 안전하다.

이 점은 우리나라의 아파트 짓는 방식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일본이나 대만에선 아파트를 짓기 전에 진입로 공사부터 한다. 우리나라는 그 반대다. 건물을 먼저 짓는다. 진입로 공사는 아파트공사가 거의 끝날 때 즈음 뒷마무리 공사와 함께 시작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인수작업 과정을 보면 역시 이같은 「우리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수위를 둘러싼 보도 등을 종합하면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대통령당선자는 아직 통치구상을 하고 있는데 인수위는 이미 통치를 시작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아무리 어수선한 국제통화기금(IMF)시대라고는 하지만 손발이 너무 안맞는다.

모든 것을 한번에 고치도록 몰아치는 IMF시대라 그런지 대통령직인수 조차도 「IMF식」으로 하려는 것 같다. 어려운 때이니 촌음을 아껴서 나라살림을 파악하고 틀린 것을 고치려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권력의 중심이 이동하다 보니 오해를 받는 부분도 있을 수 있으나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IMF시대」란 된서리를 맞은 국민들은 술 한 잔 거나하게 마시고 가다가 뚜껑 없는 맨홀에 빠진 기분이다. 아직 뭐가 무엇인지 알 수 없고 얼떨떨하기만 하다. 정신을 차려감에 따라 조금씩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프다. 완전히 정신을 차리게 되는 3월이나 4월쯤 중상을 입은 것을 알게 되면 모두 자지러질 것이 뻔하다.

국민들은 IMF한파가 피부로 느껴지면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하루 하루가 숨가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과연 우리의 생활을 앞으로 어느 수준에 맞춰야 할지 몰라 답답한 마음이다. 물가와 실업은 벌써 우리의 살림과 삶을 무겁게 억누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들의 대통령당선자에 대한 기대는 클 수 밖에 없다. IMF구제금융시대가 된 후 국민들은 대통령당선자와 인수위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대통령당선자가 지난 연말에 보여준 노력은 국민들의 신뢰감을 얻기에 충분했다. 인수위 활동이 만에하나 대통령당선자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 대통령직인수위는 말 그대로 대통령당선자가 취임후 통치를 원활히 하도록 나라살림을 있는 그대로 넘겨 받는 것이 그 임무다. 사정이나 정책제시는 그 다음의 일이다.

인수위의 활동은 불안에 떨고 있는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도록 매사에 신중해야 한다. 정권인수 활동은 조용할수록 좋다. 외부를 의식하지 않고 나라살림을 구석구석 살피는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국민들이 인수위활동을 보고 새 정권의 미래상을 더듬는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지금처럼 「IMF식」인수를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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