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일부 일간지에 눈길을 잡아끄는 광고가 실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민간차원의 보상운동을 펼치고 있는 일본의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이 사업 취지와 보상금 신청절차를 홍보하기 위해 낸 광고였다. 『진심으로 사과와 반성의 뜻』을 표한다는 하시모토 류타로(교본룡태랑)총리의 서한까지 곁들인 광고를 보고, 혹자는 그들의 바람대로 『일본 국민의 성의있는 사과의 마음』에 고개를 끄덕였을 지도 모르겠다.이 난데없는 광고를 보고 있자니 20여일전 세상을 뜬 군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가 떠올랐다. 그는 『기만적 국민기금을 절대 받지 말고, 일본 국가차원의 사죄를 꼭 받아내 달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그가 애타게 외쳤던 「국민기금의 기만성」주장에 대한 아시아여성기금측의 답변은 간단했다. 한마디로 『오해와 억측』탓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돈 몇푼에 자존심을 팔지는 않겠다는 피해자들의 결심이 한낱 「오해와 억측」탓일까. 광고 내용만 본다면 그들의 활동은 「사과와 반성」을 위한 순수한 행위로 비쳐질 수도 있다. 저간의 사정을 잘 아는 이들도 몇가지 점에서 사뭇 달라진 그들의 태도에 혼란을 느낄 수 있다. 우선 피해자를 한사람씩 몰래 만나 기금 수령을 설득하던 활동방식에서 벗어나 공개적인 「선전」에 나선 점이 주목된다. 또 내용면에서도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던 「위로금」이라는 용어를 「사과금」으로 바꾼 것이나,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협력을 힘주어 강조한 것도 전에 없던 일이다. 나아가 이 문제를 역사의 교훈으로 삼기 위한 사업도 펼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찬찬히 뜯어보면 모두 허울에 불과하다. 슬쩍 끼워넣듯 『이미 체결되어 있는 제조약을 전제로 하면서…』라는 문구를 놓쳐서는 안된다. 이는 65년 한일기본협정으로 한국 정부는 물론 개인의 전후배상 청구권도 완전 소멸됐다는 일본측의 일관된 주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사과와 반성」을 말하면서 정작 그 대상인 「국가의 전쟁책임」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다. 국가차원의 사죄와 배상, 진상공개, 책임자처벌 등 줄기찬 요구에 대해서도 묵묵부답이다. 일간지에 광고하는 당당한 태도에서 이번에 기필코 「전후처리」사업을 마무리짓고 말겠다는 그들의 강한 의지를 읽어야 한다. 그들은 한국의 여론이 뭔가 일이 생겨야 들끓는다는 것, 그리고 지금은 온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에 혼이 빠져있다는 점을 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분통만 터뜨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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