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고 이병주(1921∼92)씨 만한 문사는 드물었다. 많게는 하룻밤 원고지 200여 장을 써내리며 단행본으로 80여권 가까운 책을 집필한 왕성한 필력, 인간사의 곡절을 꿰고 있는 호방하고도 따뜻한 문체, 동서양의 고금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풀어놓는 해박한 지식. 그가 타계한지 5년이 지나면서 한 출판사에 의해 최근 전집 출간도 계획되고 있다.마침 IMF위기로 사람과 나라가 모두 살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때 그의 책 하나가 다시 출간돼 눈길을 끈다. 중앙출판사가 펴 낸 「세상살이」(전2권)는 그의 소설 못지 않게 읽는 맛과 교훈을 함께 준다. 당초 「허와 실의 인간학」이라는 제목으로 87년 나왔던 것인 데 출판사 측이 이번에 다시 펴냈다.
이씨는 「세상살이」에서 고전에 바탕한 그의 종횡무진한 사고의 범위를 다시 확인시켜 준다. 당초 사마천의 「사기」를 통해 세상 사는 지혜를 풀어보려는 의도로 집필된 것인 데, 요즘 유행하는 허다한 「처세술」류 책들과는 격을 달리 한다. 「사기」 자체가 단지 최초의 기전체 역사서라는 차원에서 기억돼야 할 문서가 아니라 「인간학의 백과사전」이라는 말처럼 이씨 자신은 그것을 풀이하며 난세를 살아가는 인간이 가져야 할 지혜를 바로 오늘 우리의 입장에서 펼쳐보인다. 「사기」와 함께 노장, 「전국책」「설원」「한비자」「손자」등 고전은 물론 현대의 일화까지 오가며 풀어보이는 인간학이다.
자칫 어려운 한 순간을 이기기 위한 유혹으로 처세술 책을 집어들 지도 모르는 독자에게 이씨는 이렇게 경고한다. 『이우위직(돌아감으로써 오히려 빨리 이른다)하는 곡선적 사고에 있어 불가결한 것은 원칙성의 견지다. 목표를 향해 곡선궤도를 정확히 달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끊임없이 궤도를 수정하기 위한 척도가 필요하다. 그것이 원칙이다. 그렇지 않으면 곡선은 어디까지 휘어버릴 지 모르는 위험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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