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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부터 걷어내자/선우중호·서울대 총장(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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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부터 걷어내자/선우중호·서울대 총장(아침을 열며)

입력
1998.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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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아침 햇살이 창문에 비치는 것을 보니 분명 새해가 밝았다. 매일 아침햇살을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모든 사람이 상쾌함을 느끼겠지만 더욱이 새해 아침에 밝은 태양을 쳐다보는 것처럼 상쾌함과 동시에 희망을 주는 것도 없을 것 같다. 해가 새해에만 뜨는 것이 아니라 매일 뜨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특히 새해 아침에 사람들이 희망에 차있는 것은 모두가 지난날의 궂은 일들을 잊어버리고 새로 출발하는 계기를 갖고자 하는 마음가짐에서 일 것이다. 지난 30여년 동안 우리는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이러한 희망을 가졌었고 또한 이 희망은 크게 빗나가지도 않았다.그러나 올해 만큼은 예년과 같이 희망에 찬 아침이 분명히 아니다. 이것은 지난달 외환위기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올해의 전망이 너무나도 어둡고 더욱이 여태껏 우리의 많은 것을 희생하면서까지 쌓아놓은 공든 탑이 하루 아침에 무너져 버린 듯한 허무감에 싸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이 허무감에서 빨리 벗어나 희망에 찬 새해를 맞이해야 한다. 단단한 땅에 물이 고이듯이 우리 국민도 역경을 거쳐야지만 강인해진다.

70년대 초 유학시절에 우연히 런던에 갈 기회가 있었다. 밤 늦게 기차로 런던역에 도착했을 때 나는 뜻밖의 사실을 목격하고 놀랐다. 그것은 많은 사람이 집이 없어 역의 대합실에서 자고 있는 것과 그 중의 몇은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것이었다. 한 때는 해가 지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는 대영제국이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진 채 역에서 나와 비교적 싼 호텔에 투숙했다. 호텔은 깨끗하였지만 실내온도는 추워서 잘 수 없을 정도였다. 아마 지금 생각하면 섭씨 15도 내외 밖에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영국도 이렇게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후 그들은 뼈를 깎는 고통과 노력으로 오늘날의 영국을 다시 건설했다. 아마 그 당시의 그 어려움이 없었다면 오늘의 영국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선진국들이 순탄하게만 성장해온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역사에서 알 수 있다. 유럽의 여러나라들이 한 때는 극심한 경제공황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지만 그들은 위기를 현명하게 대처하고 이를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로 삼았다. 오늘 우리가 처해있는 이 경제위기는 어떻게 보면 그들이 겪었던 것보다는 훨씬 희망적이라고 여겨지지만 또 한편으로는 결코 넘기 쉬운 산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들의 뼈를 깎는 고통이 따르지 않으면 이를 극복한다 하여도 진정 이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다.

요즘 정치권에서는 이번 경제위기의 책임소재를 따져 벌을 주겠다고 한다. 물론 잘못한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정책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잘못했다고 한들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라고 하던 나라가 순식간에 부도가 나겠는가. 이는 정책을 집행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일국의 대통령이 통치를 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몇천억원의 비자금을 기업으로부터 거두어들인 것이 불과 몇년전의 일이다. 또 공공기관에서 얼마나 많은 기부금을 기업에서 거두어들였으면 정부가 기부금 규제법까지 만들 지경이 되었겠나. 이것은 우리 모두가 부도덕한 마음을 한 구석에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다. 이러한 부도덕한 것들은 우리 사회에 발붙일 수 없도록 해야하며 우리 스스로가 반성하고 마음 속에 깊이 쌓여있는 허위의 거품들을 없애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에는 자기 분수에 맞지않는 과시욕에 사로잡히거나 또는 정당한 노력의 대가를 받으려는 생각보다는 비합리적인 대가를 요구하는 풍습들이 팽배하게 되었다. 우리 마음속에 무의식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이러한 거품들을 제거하는 것이 시급한 일이다. 이것이 이루어질 때 우리 사회는 정도를 걷는 도덕적 사회가 될 것이며 이를 토대로 한 경제는 더욱 튼튼해질 것이다. 이제 다시 시작하는 마음가짐으로 모든 거품을 걷어내고 새해를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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