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증가율은 9% 묶이고/은행은 BIS 맞추느라 CP만기 몰리는 연초넘겨도 자금부족 고금리는 지속IMF 체제를 성공적으로 극복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올해는 모든 경제주체들에게 「고통의 한해」이다. 연말에 다급했던 외환의 「급한 불」은 외부 지원으로 껐다고 해도 업계에 몰아닥친 「경제 빙하기」는 이제 시작이다.
○기업 자금난 회복 기미가 없다
생사가 걸린 대수술이 진행중인 금융계 구조조정의 파급효과가 업계에 본격적으로 미치기 시작하는 상반기부터는 기업들의 연쇄부도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는 이미 「2월 대란설」, 「3월 대란설」 등 최악의 시나리오가 나돌고 있다.
회사채 만기일이 집중돼 돈가뭄에 허덕이는 기업들에게는 「악몽의 세모」였던 지난 연말에 이어, 2월 중순 이후부터는 또 한차례 극심한 「보릿고개」를 겪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금리가 20% 벽을 깨고 치솟기 시작하자 기업들이 앞다투어 발행한 90일짜리 기업어음(CP) 상환만기일이 2월 중순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은행과 종금사가 결의한 2개월 대출회수 유예도 2월말께 시한이 끝난다.
3월을 넘긴다 하더라도 기업들은 극심한 자금난을 뚫어야 한다. LG경제연구소가 최근 내놓은 98년 경제전망은 지난해말의 자금난을 고금리 시대의 서막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2000년까지 금리가 15% 아래로 떨어지기는 어렵다』고 단언했다. 정부의 강도높은 통화긴축이 예고되고, 은행들도 자기 자본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기업 대출을 꺼리는 등 보수적으로 자금을 운용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은행도 여력이 없다
3월말까지 국제결제은행(BIS)의 자기자본 비율을 맞추어야 하는 은행 등 금융기관도 사실상 기업에 돈을 대줄 여력이 없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환율이 1,200원 미만으로 떨어지지 않는 한 BIS 기준을 맞출 수 있는 시중 은행은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은행들도 죽느냐 사느냐가 달린 판이기 때문에 3월에는 기업의 사정을 봐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70조 가까운 대규모 기업 여신을 쥐고 있는 종금사 사정도 최악이다. 지난 12월에도 종금사들은 8조원 가량의 기업 대출을 회수했다. 『당장 우리 회사가 부도날 판인데 다른 기업 사정을 봐줄 수 없다』는 것이 종금사측의 항변이다.
금융계의 이런 사정은 올해 내내 기업들을 괴롭힐 수밖에 없다. 한국금융연구원 최공필 경제동향분석실장의 말. 『금융계의 급박한 사정은 기업들의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불가피하게 만들 것이다. 지난해말 넘긴 외화 유동성 위기는 본격적인 경제 위기의 전초전에 불과하다. 재벌 해체 위기, 중소기업 부도 등의 사태는 경제 주체의 엄청난 고통을 부를 것이다』
○국가도 나설 수 없는 형편
IMF 프로그램에 따라 한국은행은 본원 통화증가율을 9%로 억제해야 한다. 결국 나라도 돈가뭄을 해갈해 줄 형편이 아니다. 세계은행(IBRD) 등 외국에서 지원하는 외화는 나라와 금융기관의 부도라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것이지 기업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결국 문제는 「고통을 어떻게 벗어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고통을 나눌 것인가」에 있다. 한달 동안 IMF 체제를 겪은 끝에 나온 우울한 전망은 모두가 함께 지고 갈 짐이다.<김경화 기자>김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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