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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년만에 되찾은 어머니!”/탈북 이용운씨 노모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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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년만에 되찾은 어머니!”/탈북 이용운씨 노모상봉

입력
1997.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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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때 월남하다 헤어진/16세소년이 벌써 60대/팔순노모 ‘감격의 눈물’국가안전기획부는 30일 북한 양강도 혜산시 혁명전적지 건설사업소 자재지도원 이용운(63)씨가 지난 8월 부인과 아들내외 등 가족 8명과 함께 북한을 탈출, 제3국을 통해 이달초 입국했다고 밝혔다.

이씨 일가족 9명은 이날 하오 2시 서울 덕수궁에서 미국에 거주하는 어머니 백홍용(85), 동생 이덕화(58·여)씨 등 가족·친척 4명과 감격적인 상봉을 했다.

이씨는 91년부터 매부인 덕화씨의 남편 이재학(62)씨와 편지연락을 해왔으며 재학씨 등의 도움으로 두가족이 두차례로 나눠 북한을 탈출했다.

재학씨는 『작가인 딸 혜리(33)씨가 할머니 백씨의 삶을 통해 이산가족의 아픔을 다룬 「할머니가 있는 풍경」을 미국에서 발간한 뒤 이 책으로 인해 이들이 북한에서 핍박을 받을 것을 우려해 탈북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극심한 식량난 속에서도 국경지대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재중동포 등을 통해 들어온 디스코춤이 유행하는 등 자본주의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학교마다 사상교양사업이 대대적으로 전개됐으나 효과는 별로 없었다』고 전했다. 이씨 등은 또 『현재 북한주민들 사이에서는 「쌀·불·물」의 받침을 딴 「3리을」이라는 말이 생활고를 표현하는 은어로 퍼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씨는 50년 한국전쟁때 대동강을 건너 월남하다 가족과 떨어져 북한에 살면서 평양시 탄광기계공장, 조선체육지도위원회 자재상사, 양강도 삼수군 임산사업소 등에서 노동자로 일하다 79년 8월부터 귀순직전까지 양강도 혁명전적지 건설사업소의 자재지도원으로 일해왔다. 이씨와 함께 귀순한 가족은 부인 이재관(58·노동자), 장녀 애란(33·혜산시 과학기술위원회 품질감독원), 장남 학철(31·혜산시 광산노동자), 며느리 천정순(32·혜산시 봉흥고등중학교 교원), 차남 문철(29), 차녀 미란(26·양강도 전신전화소 교환수)씨와 손자(2), 외손자(1) 등이다.<이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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