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조융자 거부 등 회생노력 포기업체 속출기업들의 「자진부도」가 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로 환율과 금리가 턱없이 치솟는 상황아래서는 더이상 버텨봤자 손해만 커진다는 절망감속에 스스로 부도를 택하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
29일 금융계에 따르면 27일 부도를 내고 화의를 신청한 청구그룹은 서울은행과 대구은행 등 거래은행들이 화의신청 수일전 협조융자를 실시키로 했음에도 이를 거절하고 계열 4개사에 대한 화의를 선택했다. 자금지원을 받아봤자 경기추락과 고금리를 버티기에는 힘들다는 판단아래 화의를 신청한 것이다. 화의가 받아들여지면 당좌거래가 정지돼 정상영업은 힘들지만 채무가 동결되고 낮은 금리의 자금지원을 기대할 수 있어 골병이 덜 든 상태에서 재기를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 회사측의 계산이다.
중견 오토바이 제작업체인 H기계는 최근 40억원의 융통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가 났다. 어음이 만기가 돼 교환에 돌린 K종금 관계자는 『만기가 된 어음을 새 어음으로 교환, 대출기간을 연장해줄 의사가 있었지만 회사측에서 새 어음용지를 가져오지도 않고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기업주들이 과거에는 회사가 어려워도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발버둥을 쳐보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이제는 자포자기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역시 최근 부도를 내고 화의를 신청한 모업체는 30여년동안 배합사료와 담배필터를 생산해온 견실한 기업이었다. 여지껏 1차부도는 물론 대출금상환기일을 못지킨 경우도 없었지만 1억5,600만원짜리 물품대금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가 났다. 거래은행 관계자는 『그날 부도를 내야할 정도로 자금사정이 급박한 상황은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환율이 급등, 수입원자재값이 치솟고 현금결제를 요구하는 납품업체들이 늘어나 생산을 하면 할수록 손해가 늘게 되자 일찌감치 부도를 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권과 재계에서는 IMF체제의 파고를 헤쳐나가기가 벅찬 것은 사실이지만 이처럼 자포자기풍조가 확산되면 우리 경제가 입을 타격이 더욱 커질수 밖에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은행 최연호 상무는 『노력을 해보면 버틸수도 있는 기업들까지 부도를 내고 화의를 신청하면 금융기관부실이 누적되는 것은 물론 연관기업들의 부도로 산업과 금융의 공멸을 가속화하게 된다』고 말했다.
더구나 부도가 나는 과정에서 일부 기업인들은 「기업은 망해도 나는 살겠다」는 행태를 보이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A은행 여신담당 임원은 『최근 부도가 난 한 중견기업의 경영주는 개인재산으로 회사에 대해 지급보증을 서면 추가대출을 해주겠다는 은행의 제의를 거절하고 회사를 부도냈다』며 『어려울수록 끝까지 회사와 운명을 같이하는 기업가정신이 더욱 절실하다』고 말했다.<김준형 기자>김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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