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축년을 좋은 해로 기억 할만한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화랑가의 유례없는 불황에도 올 한해 국내외에서 작업세계를 인정받은 젊은 작가들이 있다. 올 한해가 좋았던 젊은 작가들을 다시 본다.◎강익중/우리미술의 국제성 뽐내
지난해 국내 첫 전시가 호평을 받았을 때도 강익중씨의 성공을 점친 이는 별로 없었다. 영어단어를 손바닥만한 나무부조에 새기는 그의 작업은 올 47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돼 특별상을 수상했다. 광주비엔날레에 출품한 「미국상륙」은 영어학습장과 초콜릿동상으로 또 다시 주목받았다. 『고려청자 기법을 응용한 세라믹 설치작업을 연구하고 싶다』는 강씨는 이를 위해 98년 중 한국에 나와 도자기 만드는 법을 배울 계획이다.
◎최정화/활짝핀 ‘키치’의 미학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문화계의 새로운 화두는 복고. 복고풍은 패러디(흉내내기)와 패스티쉬(혼성모방), 키치(저속취향)로 요약된다. 설치, 인테리어디자인, 영화아트디렉션 등 「전방위」로 활동하는 최정화씨는 제2회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일상의 기억」전에 출품, 호평을 받았다. 9월부터 파리, 토론토, 방콕, 미국 하트포트, 비엔나를 거쳐 지난 19일부터 22일까지는 상파울루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98년 역시 1월6일부터 시드니 페스티벌 참가를 시작으로 외국전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 화랑가에서 그는 「팔리는 작가」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돼지머리, 마징거Z같은 한국적, 혹은 유치한 소재를 키치적 기법으로 재구성해 한국문화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외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김호득/한국화의 탈출구 모색
커다란 붓으로 휘갈긴 힘찬 선, 때로는 누런 천위에 번진 먹의 농담. 천에 물을 뿌려 말리고 여기에 먹을 양동이 채 부어버리는 파격적 작법을 통해 김호득의 한국화는 추상적 한국화의 새 경지를 연다. 정선의 폭포화구도를 연상시키는 그의 「폭포」 역시 힘의 생동감과 절제의 미학이 살아 숨쉰다.
오랫만에 마련된 그의 대규모 전시(9월24일부터 10월12일까지 금호미술관 등)는 한국화의 새 가능성을 열었다. 그러나 평론가 최석태씨는 지나치게 추상화한 그의 그림은 한국화의 전통을 단절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김준·공성훈·정복수/‘신체 담론’의 전도사들
성기와 분절된 신체, 내장과 억눌린 욕망. 인간의 신체는 작가들에게 새로운 텍스트이다. 그들은 다름아닌 육체, 그 자체를 드러냄으로써 이제 「발언하는」 육체의 미술시대를 선언하고 있다. 그로테스크한 기법으로 신체의 정치성을 드러내는 정복수, 팔뚝에 새긴 문신을 통해 강한 사회적 억압을 드러내는 김준, 자신의 알몸을 찍은 비디오아트를 통해 육체와 정신을 말하는 공성훈의 작업은 올해 미술계 화두 중 하나인 「텍스트로서의 신체」를 잘 나타낸 작품들이다.
◎이불·이수경/여성주의 작업의 성과
신디 셔먼과 바바라 크루거를 부러워말라. 페미니스트적 발언은 97년 한국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개최한 이불은 썩은 생선과 구슬 달린 화관 등 해체주의적 냄새가 강한 한국적 소재로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 「가내 양장점」시리즈의 이수경은 옷만들기라는 여성적 작업을 통해 그들에게 부과되는 암묵적 강압기제를 차분하게 드러낸다.
분홍색과 의상이라는 두 소재는 이미 서구 페미니스트들이 즐겨 사용한 것으로 좀더 새로운 패러다임(틀)을 확보하는 일이 작가의 과제. 수작업에 대한 관심은 미술소재로서의 섬유에 대한 관심도 증폭시켜 「지지체로서의 천」(환기미술관), 「미술 부드러움 바람」전(성곡미술관)같은 미술전이 마련되기도 했다.<박은주 기자>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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