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당선자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최근 정부에 대해 각종 공문서의 파기행위 중지를 요구했다. 인수위원회는 또 새 정부출범 때까지 가급적 공직인사를 자제하되 불가피할 경우 인수위측과 사전협의해 줄 것도 아울러 요청했다고 한다. 인수위가 구체적인 정보나 제보 등을 통해 이같은 요구를 했는지 즉각 알 길이 없지만 우리는 당연한 요구라고 본다.정부문서는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것이 국정을 성공적으로 운영한 기록이라면 후임정권에는 더욱 교과서적인 존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 설령 또 그것이 비록 실정의 기록이라 할지라도 차기정권에는 그런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교훈적 문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공문서의 온전한 보관과 인계는 퇴임정권이 해야 할 마지막 중요 과업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 정부 각부처에서는 당국자들의 거듭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각종 공문서가 파쇄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인수위 관계자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예컨대 통일원의 대북 극비접촉문서나 국가기관이 갖고 있는 이른바 「DJ파일」 등이 지금 파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이는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비록 얼룩진 과거행위의 기록이라 하더라도 역사의 기록은 그대로 온전하게 유지보관돼야 한다. 새삼스런 얘기지만 역사에서 교훈을 찾지못하는 민족의 장래는 보나마나다. 문서를 파기한다고 상황이 달라지고 책임이 면해진다고 생각했다면 이야말로 유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과거를 지우려는 이같은 행위는 명백한 국법유린 행위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특히 정권교체의 역사적 경험이 전무한 실정에서 이뤄지는 정권인계인수는 생경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이럴수록 퇴임정권은 있는 그대로를 넘겨야 한다. 추호의 가감이나 분식이 있어서는 결코 안된다. 잘잘못의 평가는 역사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 도리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줄 잘 안다. 또 자신의 허물을 감추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정부만은 이런 범법행위의 동조자가 돼서는 안된다. 지금 새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구제금융사태에 이른 이른바 국가부도위기의 책임을 규명하려 하고 있다. 김당선자도 지난번 회견을 통해 이같은 방침을 천명한바 있다. 잘못된 행정행위의 책임소재를 가려 교훈을 삼겠다는 것이 김당선자의 생각인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부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공문서 파기행위는 여간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증거를 인멸한다고 책임까지 면해 질수는 없는 일 아닌가.
차제에 우리는 정권말기에 예상되는 각 부서장의 선심성 인사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새 정권이 업무를 파악, 인사가 이뤄질 때까지 몇달간의 공백기 틈새를 이용, 내사람을 앉히겠다는 발상이야말로 또다른 매국행위가 아니고 무엇일까.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