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세력과 연합한 딜레마속의 정권교체 개혁극대치 얻으려면 새로운 파트너십 필요”김대중 정권이 열리고 있다. 어떤 이는 50여년만의 정권교체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1,300여년」만의 국가지도자 교체라고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든 한국현대정치사에 있어 의미있는 사건이자, 권위주의의 오명으로 얼룩진 아시아 국가들에 자랑할 만한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군부집권당에 「얼굴마담」으로 들어가 대통령이 되는 3당합당식 방법과 달리, 야당집권이라는 형태를 띠었다는 점에서도 진일보한 정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번의 정권교체가 과거 권위주의세력 및 기득권세력과의 불가피한 연합 속에서 탄생하였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딜레마를 내장한 정권교체」라고 표현하고 싶다. 따라서 어떻게 이 딜레마를 최소화하고 정권교체의 효과를 극대화할 것인가 하는 점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먼저 이번 김대중씨의 당선은 집권여당의 전술적 패배이자 야당연합의 전술적 승리이지만, 기득권세력이 건재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제한된 승리라는 점을 냉철히 인식해야 한다. 기득권세력을 인정하고 그것과 연합하여 이루어진 승리라는 점에서, 어떻게 「보수의 바다」를 헤쳐갈 것인가에 대한 섬세한 지혜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돌이켜 보면 YS 개혁은 개혁 마스터플랜의 결여, 사조직 중심의 개혁추진, 즉흥적이고 여론몰이적인 개혁스타일 등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그러나 개혁 중단과 경제적 파탄은 정당한 변화를 지체시키고 그것에 조직적으로 저항한 기득권세력 혹은 반개혁세력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YS에 대한 집단적 「이지메」속에서 반개혁세력과 기득권세력은 현 경제파탄의 책임으로부터도, 또한 정경유착과 부실경영의 책임으로부터도 멀어지게 된다. 그런 점에서 기득권세력의 엄존을 인식하고,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돌파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둘째, 신정부가 개혁의 극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개혁의 제도적 프레임을 전향적으로 짜는데서 출발하여야 한다. 달리 말하면 개혁반대세력이 근거하고 있는 제도를 혁신하는데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김대중 당선자는 자신을 가장 옥죄었던 것이 무엇인가를 되돌아 보고 바로 그것을 초기에 개혁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보수언론, 검찰, 공안기관, 반공냉전 이데올로기, 관변단체 등 정치를 집권여당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불공정게임으로 만들었던 제도들을 혁신해야 한다는 말이다. 「화려한 변신」을 통해 이제 새로운 권력자에게 찬사를 보내는 일부 언론에 현혹되지 않고, 「권력기생적」 보수적 체질을 제도적으로 바꾸는 자세가 필요하다. 언론재벌 및 재벌언론을 개혁하려다가 편한 동반의 길로 갔던 YS정권이 결국 그 언론권력으로부터 「팽」 당한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셋째, 개혁의 사회적 파트너십을 전환하여야 한다. IMF에 의해 강요된 개혁을 주체적 개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개혁적 파트너십이 필요하다. 부패척결의 일환으로 교육계의 촌지를 추방한다고 해보자. 그 경우 그동안 촌지를 거부하며 교육계의 검은 비리를 척결하기 위하여 싸워온 사회집단들을 파트너화하지 않을 때 과연 개혁이 가능하겠는가. 개혁을 위해 싸워온 사회세력, 사회집단, 용감한 「평민」들의 목소리가 조직 내부에서 제자리를 찾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한 사회적 개혁세력들의 목소리가 자기 조직을 넘어 사회로 반향되어갈 때 개혁은 「정치공학」이 아니라 국민적인 것이 될 수 있다. 개혁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개혁을 주동하는 사회적 힘이 분출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민을 관객이나 박수부대로 만드는 과거의 정치행태를 벗어나야 한다. 그런 점에서 개혁은 대통령의 「원맨쇼」가 아니라 국민적 캠페인이자 운동이 되어야 한다. 각계에서 개혁을 구체화하고 개혁을 위해 싸워온 사회적 집단들을 정당한 파트너로 하지 않는 한 개혁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보수세력과의 연합에 의한 집권은 개혁이 진전될수록 반개혁세력의 저항을 촉발하게 되고 그리하여 권력적 기반이 약화된다. 바로 이 공백은 새로운 사회적 파트너십에 의한 국민적 지지로 메워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차기정권의 시대적 과제가 경제회복에 있다고 말한다. 좀처럼 해결기미를 보이지 않는 외환위기는 개혁의 화두조차 낯설게 만드는 듯 싶다. 그러나 나는 대통령당선자가 외환위기 해결을 위한 단기처방을 해가면서도, 취임 이전에 개혁의 마스터플랜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혁의 마스터플랜 없이, 개혁의 비전없이 즉흥적인 사정과 산발적인 정책을 구사하다 좌초한 1기 문민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차기정권의 핵심과제는 성장기조의 회복이나 외환위기의 극복을 넘어 성장을 가능케 하는 민주적 구조개혁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위기의 장기적 출구는 바로 거기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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