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1년동안 비어 있던 주한미대사 자리가 채워졌다. 지난달 30일 서울에 부임한 스티븐 보스워스(Stephen W. Bosworth)대사는 15일 김영삼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는 것으로 정식 집무를 시작했다.클린턴대통령의 지명에서부터 지루한 상원 인준청문회를 거쳐 부임을 위한 신변정리까지의 준비가 통상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고 한다면, 그렇거니 알아들을 수밖에 없기는 하지만, 그의 집무개시일이 우리 대통령선거 투표일 바로 3일 전이었다는 시점이 공교롭다.
냉전시대 미외교정책 입안자로서 소련봉쇄론으로 유명한 조지 케넌은 얼마전 국제정치전문잡지 포린 어페어즈에 「외교관 없는 외교시대(Diplomacy Without Diplomats?)」라는 제목의 논문을 기고했다. 옛날과 달리 지금은 전문외교관 출신의 대사가 외교전권을 행사할 만큼 국제관계가 단순한 시대도 아니고, 각 주재국을 상대로 하는 미연방정부의 힘과 역할도 대사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덩치가 크고 분야가 다양해졌다는 것이 그 요지다.
그러니 대사가 없다고 대사관 일이 안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대사가 있다 해도 그 기능은 자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케넌의 연구에 의하면 실제로 대사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대사관인원은 30%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70%는 재무부 상무부 국방부 CIA 같은 국무부 이외의 부처에서 나와 있는 인원들이다. 이들은 대사가 반드시 알아둬야 할 일 말고는 수집된 정보나 업무처리 결과를 국무부 채널을 거치지 않고 워싱턴의 소속부처에 직보하는 것이 상례다.
신임 보스워스대사 역시 대사관의 수장으로서 고전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데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에게는 대통령의 권위와 미국의 명예를 대표하는 상징성이 있다. 그 상징성이 그냥 상징으로 그치지 않는 것은 용산 주한미군사령부 취임식장에서 발사되는 예포의 물리력이 입증한다. 한국에 새 정권이 탄생하는 시점에 클린턴 2기행정부의 주한대사로 왜 그가 선정됐는지를 생각해 보는 일은 그래서 빠뜨릴 수 없는 일이다.
39년생이니 그는 올해 만 58세다. 동부 코네티컷주의 전형적인 백인동네 뉴캐넌에서 태어나 아이비리그의 명문 다트머스대 문학부 졸업후 조지 워싱턴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대학을 나오자마자 국무부에 들어가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그때가 22세. 87년 필리핀대사를 끝으로 은퇴하기까지 26년동안 프랑스 스페인 파나마 등 주로 유럽과 중남미지역에서 근무한 직업외교관이다. 불어와 스페인어가 유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부에서는 에너지국장 경제담당부차관보 미주담당수석부차관보 정책기획실장을 거치면서 경제정책기획통으로 성장했는데, 우리와의 인연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무총장을 맡으면서부터다. KEDO에 관여하게 된 것은 정책기획실장 때 한반도 핵정책을 다뤘던 경험과, 퇴임후 「미일재단」회장 일을 보면서 미국의 탈냉전시대 아시아외교정책 연구에 참여한 경력에, 필리핀대사 시절 마르코스로부터 아키노로의 정권이양과정에서 보여준 탁월한 현장대응능력과 협상력 같은 것들이 두루 참고됐을 듯 싶다.
이런 그의 경력을 훑어 보면 그의 부임의미가 자명해진다. 그것은 두 말할 것 없이 북한 끌어내기와 한국경제 바로세우기의 두가지 목표로 집약된다. 이제까지도 그래 왔지만 이 두가지 일은 앞으로 미국이 우리 새정권과 협의하는 과정에서도 끊임 없는 갈등과 오해와 마찰이 예상되는 난제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조건만 해도 미국인들은 그것이 한국을 망치려는 것이 아니고, 민주제도와 자유시장경제가 더욱 튼튼하게 자라 미국의 자랑스런 동맹국으로 만발하도록 돕자는 것인데, 한국사람들은 그 선의를 오해하고 소동을 틈타 미국이 자기욕심을 채우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고 분해한다.
그러나 돈을 빌려주는 조건이 현실적으로 너무 가혹하고, 북한과의 교섭도 우리 역할이 너무 제한돼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두나라 국민간 갈등의 틈새에 바로 보스워스대사의 역할이 있다. 우리 새 정권과 함께 어렵게 시작된 그의 한국살이가 그에게나 우리에게 「고통을 함께 나눈 사이」로 기억될 수 있게 되기를 미리 빌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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