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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원 ‘이 완벽한 세계’(이광호의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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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원 ‘이 완벽한 세계’(이광호의 시읽기)

입력
1997.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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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할 수 있는 자의 즐거움만약 「흰눈」에 관해 당신이 시를 쓴다면 어떤 비유가 가능할까. 흰눈이 일반적으로 가져다주는 포근함, 깨끗함, 차가움, 산뜻함 따위의 감각적 반응들에 부합되는 이미지들을 찾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 시인이 그 「흰눈」에서 본 것은 차라리 흰눈에 달려 있는 「가시」이다.

시인은 「녹슨 단검을 때리는 흰눈의 가시들/ 마개를 막아둔 병속으로도/ 지글지글 타오르며 흘러드는 흰눈」이라고 그것들을 표현하고 「유리창에 무수히 희디흰 화살이 날아와/ 공작새처럼 퍼득거린다」라고 묘사한다. 이러한 묘사들은 「흰눈」으로부터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이미지들에 비해 낯설다.

가령 우리가 시읽기를 통해 어떤 편안한 공감을 얻으려 한다면 박서원의 시를 선택하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편의 시가 쉽게 읽힌다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그것이 독자들의 관습적 기대를 적절하게 충족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최근 세번째 시집 「이 완벽한 세계」(세계사)를 낸 박서원의 시는 대상을 선택하고 다루는 방식에 있어 비약적이고 돌발적인 상상력을 발휘한다. 어떤 경우 그 비약이 너무 심해서 독자들은 이미지와 이미지들, 그리고 진술과 진술들 사이의 의미연관을 찾아내기가 무척 어렵고 그래서 그의 시에서 미적 질서의 결핍을 지적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독자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시행들 사이의 의미의 틈을 독자 자신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열린 공간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예를 들면 「어머니/ 날 낳으시고/ 찌그러진 저 달이/ 동그란 은쟁반처럼 반짝이며/ 하늘을 단잠에서 깨우리라/ 여기셨겠지」라는 짧은 시 「노젓는 여자」에서, 그 진술의 모호함을 원망하기 보다는, 그 이미지들 사이의 가능한 관계들을 재구성해보는 독법은 어떨까. 그 독법은 고통을 동반하기보다는 상상할 수 있는 자에게 부여되는 어떤 즐거움을 선사할지도 모른다. 현란한 신화적 상상력과 독특한 여성적 언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박서원의 시에서, 우리는 의미의 질서를 거슬러서 소용돌이치는 고통스럽고도 황홀한 꿈의 문법을 만날 수 있다.<문학평론가 서울예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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