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를 대하는 한국과 러시아의 태도는 판이하다.「감기쯤이야」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게 우리라면 러시아인들은 어디에서나 「감기 때문에」라는 변명이 통할 정도로 심각하게 여긴다. 러시아 학교에 다니는 딸애들이 첫해 겨울 가장 의아하게 느낀 것이 바로 「감기 때문에」 학교를 쉬는 친구들을 볼 때였다. 한국 같으면 어림도 없는 얘기다.러시아어로 감기와 독감은 다르다. 일반적으로 감기를 「프로스투다」라 부르고 독감은 「그립」이라고 말한다. 코감기 목감기 기침감기 등 증세에 따라 사용하는 단어가 달라지는데 가장 무서운 것은 역시 그립이다. 그야말로 「만병의 근원」이다. 의사들도 간장이나 신장등 장기가 약한 사람에게 그립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를 잊지 않는다.
그립을 경시하는 우리네 풍조가 러시아에서 씻지못할 과오로 이어진 예도 없지 않다. 얼마전까지 주 러시아대사관에 근무했던 신모 참사관. 그는 처음에는 감기 몸살 증세에 시달렸다. 왕진온 의사도 그립이라고 처방했다. 그러나 그는 며칠간 고열에 시달리다 혼수상태에 빠졌고 결국 모스크바의 한 병원을 거쳐 핀란드로 긴급 후송됐다.
감기에 대한 러시아인의 정서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일부 언론은 보리스 옐친대통령이 감기증세로 입원했다면 일단 믿지 않는다. 여기에는 크렘린의 책임도 크다. 그의 건강이상을 감기로 둘러대다 심장병 수술로 이어진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기에 대한 러시아인의 정서를 감안하면 크렘린이 옐친대통령의 입원을 일단 「감기 때문에」라고 둘러대는 이유를 이해할 만하다.
인류 역사상 처음 발견된 조류독감인 H5N1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로 홍콩이 공포에 떨고 있다고 한다. 조류독감은 1918년 2,000여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스페니시 독감, 57년 9만8,000여명의 생명을 빼앗은 아시안 독감, 68년 4만6,000여명을 희생시킨 홍콩독감에 이어 4번째 살인적인 독감으로 기록될지 모른다. 감기에 대한 우리의 안일한 시각을 바꿀 때가 됐다.<모스크바>모스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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