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선고 내렸던 그들을 용서한다” 역사유전/서울의봄 악연→5공청산 전씨 백담사행→노YS 합당→전·노 구속→DJ당선 사면「역사의 아이러니」 「새옹지마」.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당선자,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관계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이들의 「악연」은 「서울의 봄」이 한창이던 80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두 김씨는 대권을 잡을 가능성이 있는 유력 정치 지도자이자 최대의 라이벌이었고 전·노씨는 대권욕에 사로잡힌 정치군인집단의 수뇌였다. 당시만 해도 칼자루는 전·노씨의 몫이었다. 전·노씨는 YS에게는 자택연금과 정치활동 금지의 칼날을 들이댔고 DJ에게는 「내란음모」의 덫을 씌워 아예 감옥에 가둔 뒤 사형선고를 내렸다.
6공출범 이후 상황은 역전되기 시작했다. 먼저 「업보」를 치른 사람은 전씨. 여소야대 정국에서 정국의 주도권을 쥔 야권의 두 김씨는 5공청산 카드로 노태우정부를 압박했고, 노대통령은 「자의반 타의반」 전씨를 백담사로 「유배」시켰다. 전씨는 두 김씨의 정치적 양해가 있고 나서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가하면 6공에서 노씨와 김영삼씨는 3당합당으로 손을 잡았다.
김영삼 정부출범은 전·노씨에겐 차라리 「재앙」이었다. 95년 터진 「비자금사건」은 노씨의 투옥을 가져왔고, 전씨의 수감으로 이어졌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전·노 파동의 매듭이랄 수 있는 이번 사면이 사실상 김당선자의 대선승리를 계기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김당선자가 대선과정에서 이들의 사면을 주장한 게 사면권 행사에 따른 김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줬고 김대통령의 사면구상을 김당선자가 수용함으로써 이들 4명의 관계는 화해와 용서로 「점정」됐다.<신효섭 기자>신효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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