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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은 사람을/유석춘 연세대 교수·사회학(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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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은 사람을/유석춘 연세대 교수·사회학(특별기고)

입력
1997.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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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보기 싫다 하더라도 경제위기를 타개할 후보가 없다 하더라도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선택의 순간에 다다랐다. 대권경쟁이 드디어 막판에 이르러 이제 국민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선택을 받는 후보들의 입장에서는 단 하루가 아쉬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택을 하는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이번 선거과정이 유난히 길다고 느껴졌다. 왜 그럴까.

몇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우선 집권 여당의 후보선출이 경선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따라 이루어짐으로써, 국민들은 일찌감치 대선 분위기에 휘말려 들었다. 게다가 「TV토론」이라는 새로운 실험이 여당의 경선과정과 맞물려 연초에 시작되어 최근까지 계속된 것도 대선과정이 길다고 느끼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덧붙여 신문과 잡지는 물론 심지어는 가상공간조차 토론회를 개최하여 국민의 눈과 귀는 반복적으로 대선후보에 노출되었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지긋지긋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언론매체를 통한 후보와의 접촉이 국민들에게 즐거움보다는 괴로움을 준 까닭은 무엇일까. 이 문제 또한 여러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상대방 흠집내기에 의존하는 선거운동 방식 등이 대표적인 비난거리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원인은 경제적 위기의 갑작스런 현실화일 것이다. 일하던 직장이 없어지고 저축한 돈이 순식간에 묶이는 판에 후보들이 TV에 나와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아무리 많이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국민은 오히려 고통을 분담해 달라는 요구를 수용할 각오인데, 후보들은 장밋빛 공약만 제시했다. 막말로 「꼴도 보기 싫다」는 표현말고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선택의 순간이 임박할수록 선거에서는 소위 말하는 「부동표」가 줄어들어야 한다. 어떤 선거이건 초반에는 부동표가 많다. 후보나 정당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거과정을 통해, 특히 언론매체를 통해 후보와 유권자의 접촉이 늘어 날수록 부동표는 줄어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이런 일반적인 경향이 적용될 수 없는 예외적인 상황으로 치달았다.

지역연고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우리의 선거현실은 어차피 예외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는 그나마 지역연고에 좌우되지 않는 「중립적」인 표가 막판까지 지지할 후보를 잃고 떠돌고 있다. 후보 어느 누구도 유권자가 겪고 있는 위기감을 극복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평가되지 못한 때문이다. 후보들은 모두 「3김청산」 「정권교체」 「세대교체」라는 정치적 쟁점으로 선거를 출발하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가 역대 선거 가운데 가장 투표율이 낮은 선거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87년 6월의 민주화 이후 치른 두 번의 대통령선거는 각각 89%(87년)와 82%(92년)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또한 세번의 국회의원 선거는 각각 76%(88년), 72%(91년), 64%(96년)를 기록했다. 일반적으로 국회의원 선거보다는 대통령 선거의 투표율이 높다고 한다. 그러나 그 많은 부동표가 투표 기권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받아 들인다면, 이번 대선이 역대 대선 가운데 최초로 70%대 혹은 그 이하의 투표율을 기록하는 선거가 될 것이란 예측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투표율이 높은 선거가 반드시 바람직한 선거인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90%대의 높은 투표율을 보여 준 해방직후의 우리나라 선거와 오늘날 서방국가의 낮은 투표율을 생각하면 높은 투표율이 반드시 바람직한 선거의 전제조건이 될 수 없음은 쉽게 확인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에 대한 「일반적 무관심」으로부터 비롯된 낮은 투표율과, 정치에 대한 「첨예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지지할 후보가 없어 투표율이 낮아지는 상황은 하늘과 땅과 같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아무리 후보들이 「꼴보기 싫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선거과정이 지긋지긋 했다 하더라도, 아무리 둘러 보아도 경제위기를 타개할 지도력있는 후보가 없더라도, 우리는 투표를 하여야 한다. 세 후보의 자질과 능력을 비교해 보고, 결정적인 결점 등을 따져본 후 사적인 연줄이나 지역감정에 연연하지 말고 그래도 나은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최선이 없으면 차선의 후보라도 아니 차차선의 후보라도 뽑아야 한다. 미우나 고우나 그 사람이 앞으로 21세기 한국의 지도자가 되어 경제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유권자들이 정당한 심판을 통해 힘을 모아줄 때 새로운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의 과제를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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