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기분이 안난다」고 한다. 「IMF 한파」를 직접 체감하는 해외 주재원이나 본국과 관련된 일을 하다 사업에 지장을 받고 있는 교포뿐만의 얘기가 아니다. 미국 사회에 뿌리내려 이제는 동화됐다 싶었던 한인들도 마찬가지 감정이다. 무슨 일을 해도 도무지 흥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친정이 쫄딱 망한 며느리가 시집에서 눈치 보듯 풀이 죽어 버렸다.이들의 무기력증은 꼭 마음이 빈한한 탓만은 아니다. 이보다 더한 아픔은 그동안 힘들게 쌓아온 「한국인의 가치」가 이번 사태로 하루 아침에 무너져 내린데서 오는 허탈감이다. 한인에 대한 똑똑하다는 정평은 이제 「거짓말쟁이」로, 부지런하다는 말은 「허장성세」라는 단어로 대치됐다. 한인에 대한 주변의 눈초리가 고울리 없으니 맥이 풀릴 수 밖에 없다.
여기에는 한국 사태를 한껏 농단하며 즐긴 미 언론의 책임이 크다. 「또 거짓말」 「그 친구들(guys)」 등 원색적 용어를 서슴없이 사용하며 비아냥거린 미 언론의 시각은 정도를 지나친 감이 있다. 한국 대선에 관한 이들의 보도도 예외가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뉴욕타임스는 현재 한국이 당면한 가장 큰 난제는 경제위기인데 어느 후보도 이에 대한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 채 후보간에 병역, 건강문제 등이 쟁점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면 수긍가는 기사이지만 타임스는 나아가 미국에서 달려온 후보의 아들이 TV가 생중계하는 가운데 병원에서 키를 재야했다고 비꼬았다. 다음날 대문짝만하게 실린 한 후보의 삭발 장면은 결연함을 느끼게 하기 보다는 웃음을 자아내는 블랙 코미디같았다. 압권은 모후보의 위성대담을 보도한 월스트리트저널이다. 이 신문은 『한국의 대외 신인도를 제고하기 위해 마련된 이 대담에 팝가수 마이클 잭슨이 나와 몽롱한(moony) 목소리로 「한국은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조롱에 가까운 낯 뜨거운 기사이다.
이 모든 것은 빈 틈을 보인 우리의 탓이다. 정말 독을 품어야 한다. 그 출발점은 오늘의 바른 선택으로부터 시작되야 할 것이다.<뉴욕>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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