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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일어서야 할때/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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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일어서야 할때/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한국논단)

입력
1997.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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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대 질서에서나 통하던 안이한 경제운영으론 개방된 세계경제질서속 설자리가 없다지난 한달동안 우리 경제는 국제통화기금(IMF)구제금융이라는 큰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었다. 연일 폭락하는 주가와 폭등하는 환율로 국민들은 한국경제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불안감과 참담한 심정 속에 살았다.

오늘 우리는 새 지도자를 선출하게 된다. 그는 당선후 곧바로 우리 정부의 IMF합의사항 준수와 경제개혁의 의지를 내외에 천명해야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일단 급한 외환위기는 진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IMF협상 타결이 위기의 끝이 아니었다는 것을 지난 2주간 배웠듯이 새 대통령 당선자의 의지천명이 또한 위기의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오늘이 있게 되기까지를 차분히 되돌아 보고 앞으로 할 일을 계획해 나가는 것이다.

우리 경제는 지난 30여년 동안 세계경제사에 유례가 없는 빠른 산업화를 이룩해냈다. 또한 우리는 불과 10년만에 초고속의 정치민주화를 이루어냈다.

그러나 지난 10년동안 우리는 혼동과 착각 속에 살았다. 첫째는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우리 경제의 고속성장을 가능케 한 각종 제도 및 조직, 그리고 관행이 개방화·자유화의 시대에도 계속 잘 작동되어 줄 것이라고 착각하고 그것을 바꾸지 못하였던 것이다. 둘째는 과거에 우리가 때때로 처한 경제난이 극심한 외환위기와 국가파산사태로까지 치닫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냉전체제라는 보호막이 있었기 때문이며 이제는 그것이 이미 무너져 내린 상태라는 사실에 대한 깊은 인식을 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70년대 초반, 그리고 80년대 초반 경제불황과 더불어 기업과 금융기관의 부실화, 외환보유고의 고갈이라는 경제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그때 우리가 남미나 필리핀과 같은 국가지급불능(Moratorium)사태까지 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우리 경제의 위기가 안보의 위협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냉전체제 하에서의 미국과 우방의 고려가 작용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80년대초 극심한 외환부족상태에서 미국계 은행과 투자자들은 미국정부가 한국경제를 파산하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지금처럼 자금을 급히 철수시키지는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 미국의 지원하에 일본으로부터 40억달러, 그러니까 GNP에 대한 상대적 규모로 보면 지금의 약 250억달러에 달하는 정부차관을 얻어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러한 세계질서의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달라졌다. 냉전시대는 끝나고 미국은 한국에 대해서도 종전 필리핀 브라질 멕시코에 대했던 것과 똑같은 다자간 우선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바로 IMF를 전면에 내세우고 제2선에서 지원하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는 변하고 있는 세계정치, 경제질서 하에서 당연한 귀결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종전과 같은 안이한 경제운영방식 그리고 과다차입구조와 같은 구시대 질서에서나 통하던 제도와 관행의 틀 속에 안주하고 있었다.

기업과 금융부문에 부실이 생기면 구제금융과 한은특융으로 적당히 넘겨보려고 하였으며 이러한 정책하에서 기업들의 과다차입과 높은 부채비율은 용납되었고 방만한 투자확대는 오늘날의 재벌기업과 한국국민의 모래성과 같은 부를 쌓아올렸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오늘날의 개방된 세계경제질서는 종전과 같은 기업·금융부실에 대한 땜질처방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직시하고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이제 우리 스스로 제도, 관행, 정책운용방식 등 모든 면에서 시급히 국제화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부와 민간의 조직과 경영방식을 혁신하고 새로운 시장질서를 정립하여 국제적으로 납득되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경제정책, 기업경영방식, 회계감사제도 등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와 같은 작은 나라로서는 스위스 싱가포르 홍콩과 같은 정도의 국제화를 이루어 나가지 않으면 이제 새로운 세계질서 하에서 설 자리가 없다.

그동안 우리는 세계화를 외쳐왔으나 이는 정치성 구호로 그치고 말았다. 이제야말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그것은 세계의 모든 이웃나라들을 친구로 만들며 혼자 일어서는 것이다. 우리의 지난 역사와 문화를 볼 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새로 선출되는 지도자는 이런 어려운 과업을 이루어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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