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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대통령을 원합니다/정옥자 서울대 교수(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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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대통령을 원합니다/정옥자 서울대 교수(아침을 열며)

입력
1997.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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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선거운동이 끝나고 이제 운명의 날이 밝았다.어제까지만해도 투표장에 갈지 말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는 사람들이 주위에 수두룩했다. 『선거는 해서 무엇하나.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것을…. 선거 때면 폭포수 같이 쏟아놓는 그 많은 공약은 선거만 끝나면 공염불이 되고 또 그런 정치행태에 대해 국민은 너무나 당연히 여기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누가 끊어 버릴 수 있나』하는 독백을 흔히 듣게 된다.

사실 우리는 선거 중독증에 걸려 있는지도 모르겠다. 투표용지에 빨간 동그라미만 찍으면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으로 착각하며 살고 있다. 그 동안 진행되어온 선거문화를 살펴보면 우리는 존경할 만한 지도자를 우리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선주자들의 토론프로를 보고 있노라면 토론자들의 시시콜콜한 질문에 멀미가 난다. 국가의 방향성과 국민통합의 원대한 포부를 묻는 질문은 없다. 큰 밑그림이 제대로 되어야 세부묘사도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엔 각론만 있지 총론은 없다. 그리고 대선주자에게 통계수치나 방법론만 묻는다.

대선주자들의 대응방식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책임전가를 일삼거나 말씨름을 하여 보는 사람의 심성마저 메마르게 한다. 대선주자들은 상호비방과 흑색선전보다는 서로에게 예의를 지키며 정정당당하게 페어플레이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리하여 누가 당선되든지 그 결과에 승복하고 이런 저런 잡음으로 국력이 소모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믿음을 국민에게 주었어야 했다. 국민들은 상처투성이의 만신창이가 된 지도자를 원치않는다. 상호간에 애경심이 없는 살벌한 정치풍토를 국민들은 혐오한다.

앞으로의 지도자는 국민에게 신뢰를 받고 그것을 토대로 국민대통합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난관이 클수록 국민의 일체감과 단합이 필요하다. 국민의 단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지도자는 국민의 존경부터 확보해야 한다. 국민의 존경을 받는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된 그 순간부터 나날이 새로워지기 위하여 끊임없이 자기혁신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통치자가 공부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조선왕조의 통치자들은 세자가 되면 서연을 통해 신하들에게서 교육을 받고 왕이 된 후에는 경연을 하여 자기계발에 힘썼다. 경연을 통하여 자신의 학문적 능력을 배양하고 신하들과 고금의 치란을 토론함으로써 자기시대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도모하였다. 경연을 기피하는 왕은 결국 반정의 대상이 되어 쫓겨나기도 하였으니 연산군이 대표적인 예이다.

18세기 조선문화 중흥기의 영주 정조대왕은 피동적인 경연의 자세에서 벗어나 자신이 주도하여 신하들을 규장각에 불러모아 경사를 토론하고 문화정책을 기획하여 추진하였다. 경전에서 밝히고 있는 진리는 시간이 경과해도 변치 않지만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제반 양상들은 역사에서 파악할 수 있으므로 경학과 역사는 상호보완하는 인문학의 중심축이라 하여 경경위사(경전의 진리는 날줄이고 역사현상은 씨줄로 인식)의 정신에 입각하여 공부하였다. 그는 신하들에게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신하들을 가르치는 경지에 이르러 스스로 군사(왕이면서 스승)를 자부하였다.

오늘날의 공무원들도 재교육을 받고 있다. 그들을 통솔하고 국가를 책임지는 대통령의 자질향상은 더욱 필요하다. 국민의 정치에 대한 불신과 허무주의를 불식하고 국민에게 희망과 믿음을 주는 청사진을 제시하는 일은 대통령 자신의 능력과 자기확신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참모들이 만들어내는 기획안으로 국민을 설득할 수 있으리라고 착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져 있다는 사실에 유의하여 대통령 당선자 스스로 전통시대의 경연을 계승하는 획기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 국민은 강인한 생명력과 추진력을 지닌 우수한 민족적 전통을 갖고 있다. 그 잠재력에 불씨를 당기면 지금의 난국을 능히 극복해 내고 보다 바람직한 미래로 나갈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다. 그 불씨를 당길 만큼 뜨거운 가슴과 탁월한 식견을 가진 지도자를 우리는 원한다. 서로 믿고 서로 돕는 「우리나라 좋은 나라」는 앞으로 이 나라를 이끌어갈 대통령 당선자와 국민 모두가 대동단결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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