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674533429/양반집 진귀한 맛거리 듬뿍/고추장·장아찌·정과류·다식·단자…/장맛과 50여년 손맛의 만남/밑반찬 푸짐… 전화주문도 받아호남 내륙 깊숙히 들어앉은 순창은 지리적 조건이 그러하듯 예로부터 고추장과 된장, 장아찌 등 갈무리식품으로 이름난 고장이다. 산과 들에서 난 콩과 달고 매운 고추는 순창의 첫째가는 특산물로 꼽혀왔다. 그 콩과 고추로 담근 순창고추장은 지금까지도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순창의 노인들이 들려주는 장맛 이야기는 더욱 실감난다. 보릿고개 때마다 해안지방처럼 꼬막이나 바지락같은 해산물이 나는 것도 아니고 푸성귀만 나는 산골에서 오직 장맛 하나로 그 어려운 고비를 넘기곤 했다는 것이다. 밥은 모자라지만 나물에 고추장을 듬뿍 넣고 썩썩 비벼먹으면 매콤하고 단맛에 어린아이까지 투정않고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새까만 꽁보리밥일망정 빨갛게 익은 장아찌 몇 조각만 있으면 물에 훌훌 말아 먹었다. 순창의 장맛은 서울에까지 알려져 고추장과 장아찌가 진상품에 올랐다. 맛의 맥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는 주인공이 여전히 생존해 있다. 가남리 가잠마을의 이기남할머니의 손맛은 더욱 남다른 데가 있다. 고추장은 물론 갖가지 장아찌와 정과류, 다식, 단자 등 옛날 양반집의 진귀한 맛거리들이 할머니의 손끝에서 그대로 다시 태어난다.
순창읍 사거리에서 불과 2.5㎞거리에 있는 이기남 할머니집(0674―53―3429)의 넓은 장독대는 물론이고 마당에도 크고 작은 독으로 가득차 있다. 독마다 고추장과 각종 장아찌류가 차곡차곡 담겨 있다. 무장아찌, 더덕장아찌, 감장아찌, 굴비장아찌 등 밥상의 귀물들이 없는 게 없다. 곳간의 시렁마다 싸리채반과 동아정과, 유자정과, 연근정과 등 각종 정과류를 비롯, 감단자 깨다식 송아다식 청평엿까지 담은 소쿠리들이 즐비하게 얹혀져 있다.
『설을 새면 일흔일곱이여』라고 말하는 이기남할머니는 스무살 나던 해 천석꾼 대감집에 시집와 이제껏 해가 뜰 때까지 잠자리에 누워있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지금도 온종일 넓은 마당을 이리저리 오가며 갈무리 음식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서울과 광주, 부산 등지에서 주문한 정과류를 엿에 고고 그릇에 옮기느라 허리를 펼 겨를이 없다. 맛을 보라며 손수 담아 내놓는 다과상에는 보기에도 희귀한 동아정과와 감다식, 문어포, 유자정과, 집에서 담근 곡주 등 손을 대기가 아까운 맛의 진품들이 올라 있다. 점심 때라 밥보다는 떡국이 좋을 거라며 차려낸 소반에도 짭짤한 밑반찬들을 곁들였다. 빨갛게 보푸라기가 이는 굴비장아찌는 황태를 무쳐놓은 듯 부드러운 촉감이 독특하다. 향긋한 고추장 내음이 입안 가득 퍼지며 씹히는 듯 마는 듯 맛을 음미할 겨를도 없이 저절로 넘어간다.
할머니는 평생을 수많은 식솔의 먹거리와 집안 대소사에 쓸 음식 장만으로 손에 못이 박혔다. 작고 고왔던 손은 이제 온데 간데 없고 굵고 투박한 손마디만 남았다. 하지만 『이것이 내 소임인겨』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얼굴엔 처녀적 고운 모습이 남아 있다. 할머니는 하루에도 수십통씩 걸려오는 전화가 오히려 즐겁기만 하다. 할머니의 손맛은 이제 널리 알려져 나들이를 겸해 직접 찾아오는 사람도 있고, 전화로 주문하는 사람도 있다. 1㎏을 기준으로 동아정과는 3만5,000원, 감단자는 1만3,000원, 무·오이장아찌는 1만5,000원, 더덕장아찌는 2만원이며 굴비장아찌(4마리)는 3만원.
◎찾아가는 길/정읍·내장사 거치거나 전주·임실코스 이용을
순창은 호남고속도로가 지나는 정읍에서 내장사를 거쳐 넘어가거나 전주에서 임실을 지나 간다. 해가 짧아진 겨울에는 하룻길로는 다소 무리다. 그러나 88고속도로로 연결되는 순창IC가 있어 큰 불편은 없다. 순창에서 하루쯤 묵으며 강천사와 내장사 등을 둘러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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