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 2천만원 불우이웃기탁… “일 사과 받아내야” 유언『나를 17세때로 돌아가게 해주오. 당신네 일본사람들이 나의 청춘을 망쳐놓았소』 91년 처음으로 일본군 군대위안부였음을 공개선언, 군대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김학순 할머니가 16일 새벽 1시40분 서울 동대문구 이화여대부속병원에서 파란많은 삶을 마쳤다. 향년 75세.
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정부 보조금만으로 어렵게 생활했던 김할머니는 최근 병세가 악화하자 다니던 동대문감리교회에 『나보다 더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써달라』며 1천7백만원이 든 통장 등 전재산 2천만원을 기탁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관계자는 김할머니가 『일본의 기만적인 국민기금을 절대 받지 말 것과 일본의 국가차원 사과를 꼭 받아내 달라』는 유언을 했다고 전했다.
1922년 평양에서 출생한 김할머니는 독립운동을 하던 부친을 따라 만주로 갔다가 17세때 중국내 일본군 군대위안부로 강제연행됐다. 5개월만에 동포의 도움으로 위안소를 탈출, 중국 상하이(상해)에 머물다 46년 서울로 돌아왔다. 한국전쟁때 남편을 잃고 병과 사고로 아들 딸을 잃는 등 기구한 인생을 살아왔다.
김할머니는 일본정부가 계속 군대위안부의 진상을 인정하기를 회피하자 91년 8월15일 자신이 군대위안부였음을 공개하고, 92년 일본정부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는 등 군대위안부 문제를 알리는데 혼신을 다했다.
일본의 시민단체 「전후보상실현시민기금」은 이날 『김할머니가 그동안 요구해온 공식사죄와 국가보상이 실현되지 않은채 타계한데 대해 일본정부에 거듭 분노를 느낀다』는 추도성명을 발표했다.
장례식은 18일 상오 9시 동대문감리교회장으로 서울중앙병원에서 치러지며 상오 11시 서울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앞에서 노제를 지낼예정이다. 장지는 충남 천안시 망향의 동산. 연락처 (02)489―3499<이성희 기자>이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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