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공땐 육영수 여사 개인교수도/북 공작금 강사임용 로비자금 써15일 구속기소된 고영복 서울대 명예교수는 61년 북에 포섭된후 철저한 보수 우익학자로 분류돼 권력핵심층과 교류했으며, 북한은 그런 고교수를 통해 남한의 정세파악에 주력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고교수는 검찰과 안기부 조사과정에서 『남과 북의 이념적 대치 상태에서는 (남도 북도 아닌)중간자적 입장을 지키겠다』고 전향거부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고교수는 3공시절인 66년 4월부터 두달간 육영수 여사의 개인교수로 청와대 거실에 딸린 방에서 자신의 전공인 문화일반과 사회구조론을 강의했다. 박정희 대통령도 틈틈이 찾아 고교수를 격려했다. 고교수는 이후 통치자로부터 신임을 받아 박정권시절에는 남북적십자회담 자문위원, 5공때는 사회정화운동의 이론제공가, 현정권에서는 한국문화정책개발원 초대원장으로 활약했다.
○…고교수는 61년 고정간첩이 건넨 공작금 1천달러 전액을 당시 S대 전임강사를 위한 로비에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 대학 법대교수 4명중 J, G교수는 선물·향응을 받은 기억이 없다고 진술했고 나머지 S, K교수는 이미 사망했다.
○…수사관계자는 고교수가 한국전쟁때부터 기회주의적인 행동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그는 50년 9월 「지주집이어서 북한정권이 들어서면 설 땅이 없어 충성을 보이기 위해」의용군에 입대했다. 포로가 된 뒤에는 남측잔류를 선택하면서 주소를 서울로 기재, 본적지(경남 함안군)에는 자신의 의용군 입대사실이 통보되지 않도록 전력을 숨겼다.<이태희 기자>이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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