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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자회담의 향후 과제/백진현 서울대 국제지역원 교수(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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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자회담의 향후 과제/백진현 서울대 국제지역원 교수(특별기고)

입력
1997.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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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에 중심두고 장기적 시각서 접근/합의보다는 실천 중요/대외 신뢰회복도 시급제네바에서 개최되었던 4자회담 본회담이 예상대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끝났다.

지난해 4월 한·미 양국이 4자회담을 제안한 이래 그동안 설명회, 예비회담, 본회담 등 명칭을 바꿔가며 당사자들이 만났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변함없이 하나로 귀결된다. 그것은 한마디로 북한이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겠다는 진정한 의사가 있느냐 여부이다. 이것이 없는 한, 앞으로의 회담이 우리 정부가 원하듯 분과위원회 형태로 진행된다고 해도 의미있는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문제의 본질은 회담의 명칭이나 진행방식이 아니라, 평화정착의 의사이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에서 우리측 대표는 기조연설을 통해 회담에 임하는 한국정부의 기본입장을 밝혔다. 요점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당사자인 남북한이 중심이 되고 미·중은 이를 실효성있게 뒷받침한다는 것. 또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남북한간 신뢰구축과 긴장완화가 필요하며, 이는 기존 합의를 실천함으로써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이보다 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찾기는 어렵다. 결국 앞으로 회담은 이러한 우리의 입장에 대한 북한의 동조를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 또 이 과정에서 북한이 요구하는 미북관계 개선과 경제지원 문제 등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핵심이 될 것이다. 향후 4자회담의 진행과 관련, 다음 사항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우선, 본회담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든 가장 중심적인 의제는 남북한 관계이어야 한다. 북한은 이번 제네바 회담에서도 여전히 미·북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이것이 진심이라면 회담이 계속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설혹 이런 극단적인 주장을 거두어 들인다 해도, 남북대화에는 형식적으로 응하고 미국과의 관계개선에만 매달리는 등, 혼선을 조성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모든 상황에 대한 판단기준을 남북관계의 진전여부에 두고 회담의 방향을 잡아가야 한다.

둘째, 4자회담은 장기적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결국 북한의 변화이며, 변화란 단시일에 오지 않기 때문이다. 성급하게 가시적 성과를 얻으려고 할 때 불필요한 양보나 실수를 하게된다. 또 형식적인 합의보다 실질적인 관계개선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열가지 합의보다 한가지 실천이 더 중요하다. 한반도의 평화는 4자가 합의문에 서명한다고 오는 것이 아니라, 합의의 이행을 통해 남북간에 긴장이 완화되고 신뢰가 구축될 때 가능한 것이다.

셋째, 본회담에서도 긴밀한 한·미공조는 회담 성공의 관건이다. 북한은 한국배제와 대미접근을 통해 한·미간 분열을 노리는 전략을 계속할 것이며, 이것이 성공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믿는 한 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한·미 양국은 긴밀한 공조를 통해 이러한 분열전략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시켜야 한다. 이와 함께 중국의 역할에 대해서도 깊이있는 검토가 필요하다.

주지하듯이 이번 제네바 회담은 대통령 선거를 불과 1주일 앞두고 열렸다. 당연히 미묘한 회담개최 시점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다. 대선전에 본회담을 개최, 4자회담을 기정사실화함으로써 차기정부가 다른 소리를 못하도록 미국이 무리하게 일정을 잡았다는 견해도 있다. 이 때문에 충분한 준비도 없이 본회담이 조급히 열렸으며, 심지어 미국이 북한에 대해 본회담 참석 조건으로 대규모 식량지원을 약속했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번 회담 개최시기는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간 불신, 특히 한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미국의 불신과 상당한 관계가 있는 듯하다.

경제든 외교든, 정책의 일관성이 없고 투명성이 없으면 신용을 잃게된다. 또 정책과 입장을 정치적 편의에 따라 쉽게 바꾸면 상대는 우리를 믿지 않는다. 정치권에서는 한때 경수로 지원문제를 다시 거론한 적이 있다. 그런데 국제적 합의를 쉽게 바꾸겠다는 발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외환시장이나 금융시장뿐 아니라, 외교무대에서도 고립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차기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중의 하나는 추락한 한국의 신용을 회복하는 것이며, 특히 한·미관계에서 점차 깊어지고 있는 불신의 골을 하루속히 메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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