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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족의 한의학과 장수법(유라시아 장수촌을 찾아서: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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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족의 한의학과 장수법(유라시아 장수촌을 찾아서:15)

입력
1997.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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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의 기본원칙은 ‘조섭양생’/아시아의 전통의학과 한의학/한족 몽골·티베트 등 이주로 그지역 의학에 영향 미쳐중앙아시아에는 소수민족을 위한 자치구, 자치현, 자치주가 많다. 네이멍구(내몽고)는 성과 맞먹는 자치구로 몽골족을 위해 설치됐다. 시장(서장)자치구는 티베트족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졌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자치구, 자치현, 자치주에도 한족들이 무리지어 이주했다.

시장자치구나 위구르족 자치주에서 자주 일어난 민중봉기 내지 반란도 한족이 들어가 실권을 차지한 데 대한 일종의 반발이라 볼 수 있다.

의학도 예외는 아니다. 몽골에 가면 몽골전통의학을 펼치는 몽의원이, 티베트에는 티베트 고유의 장의원이 있다.

또 신장(신강)자치구에는 위구르족의 전통의학을 중심으로 한 유의원이 있다. 이들의 치료법은 한의학과 차이가 있지만 상당부분이 한의학이나 중의학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중앙아시아는 한족에 의해 정치적으로 한족화 또는 중국화가 추진돼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이 오랫동안 간직해왔던 고유 전통의학도 한의학과 중의학에 의해 침식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날에도 한의학이나 중의학을 무시하고 중앙아시아 전통의학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역사적으로도 이들은 끊임없이 인도 불교의학이나 아랍의학 같은 외래의학의 영향을 받아왔다. 결국 중앙아시아의 전통의학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중의학 내지 한의학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서양의학을 거슬러 올라가면 히포크라테스 이후 수없이 많은 의학관계 고전이 있다. 이 책들은 현재 시대에 뒤떨어진 역사적 문헌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한나라때 펴낸 「황제내경」이 오늘날에도 권위가 있으며 과학적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이같은 점이 동양과 서양의 의학에서 눈에 띄는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수많은 정치적 변혁이나 혁명을 뛰어넘어 황제내경은 아직도 권위가 인정되고 있다. 어느 의미에선 시간을 초월해 그 가치가 유지되고 있다.

중국의 전설시대라 할 수 있는 먼 옛날에 황제가 황제내경을, 신농이 「신농본초경」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없다. 기원전 140년부터 87년까지 한나라를 지배한 무제는 오늘날 시안(서안)에서 240㎞쯤 떨어진 황넝(황릉)이란 고장에 황제의 유업을 기리기 위해 비를 세웠다. 하지만 황제내경과 같은 의서는 한나라 이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한의학은 음양과 목·화·토·금·수의 오행이 상생·상극하는 사상을 기초로 한다. 후세에는 인도와 아라비아 연금술의 영향을 일부 받기도 했다.

◎한의학의 발자취/음양오행 바탕에 연금술 영향/선진∼청 이어지며 체계적 발전

중국의 전통의학은 전설적인 삼황오제와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사기열전」에 나오는 편작과 같은 명의를 배출했다. 양생·귀생·전생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불로장생 사상과 연결돼 섭생의학도 만들어냈다.

한나라시대에는 순우의, 화타 같은 의사가 출현했으며, 후한때는 장사의 태수였던 장중경이 「상한론」을 써서 전염병 치료에 도움을 주었다. 삼국육조시대에는 손사막의 천금요방과 천금익방, 왕수(왕도)의 외태비요가 저술됐다. 또 금원사대가가 나타나 색량파(한량파), 공하파, 온보파, 양음파 등의 유파가 생겨났다.

한의학 발전을 요약해 보면 오래 전부터 있던 의학지식이 기원전 6, 7세기 선진·한나라·남북조시대를 거치면서 체계적으로 갖추어졌으며 당·송·원·명·청나라로 이어지면서 크게 발전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 서세동점의 큰 물결과 서양의학의 도입으로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진나라는 이른바 「불과 칼」로 주위의 모든 나라를 정복했다. 진시황은 만리장성을 쌓고 모든 행정을 중앙으로 집중시켰다. 이후 생겨난 한나라는 삼국으로 분열되고, 북방 야만족과 한족 왕조사이에 서로 대립하는 시기가 이어졌다.

그러나 중국은 이 시기에 사라센제국과 함께 세계적 수준의 문명을 발전시켰으며 비단길을 통해 동서교역도 활발히 했다. 중국의 전통의학도 크게 발전했다. 황제내경이 만들어지고, 화타가 나타났으며 중국의 히포크라테스라 불리는 장중경이 상한론을 완성했다. 7, 8세기에 중국의 한의학은 중국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나라와 상호교류가 이뤄졌다. 한국, 일본, 인도차이나는 물론 중앙아시아 국가와도 교류했다.

물론 변방이라 불렸던 중국의 주변국가들은 제각기 오래 전부터 고유문화를 유지해왔다. 민간의료 방법도 있었으나 공식적인 기술의학이 생겨나면서 중국의 한의학 이론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우리나라나 일본, 베트남 의학의 뿌리를 찾아보면 중국과 공통된 근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엄격하게 따져보면 한의학 형식을 모방한 차원에서 끝난 것이 많다. 병이나 치료와 관련해 각기 고유의 독창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으나 한의학에 비판적인 흐름도 강했다. 아라비아 의사들이 그리스의학의 전통을 이어받았지만 독창성과 비판정신을 잃지않은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한의학과 장수법/소사·소욕·소사·소노 등 평소생활서 ‘12소 원칙’ 중요

중국에 가면 16세기에 허준 선생이 쓴 「동의보감」을 도처에서 만날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은 아직 중국에서 환자진료의 길잡이로 쓰이고 있다. 필자는 우루무치, 둔황(돈황), 시안, 베이징(북경)에 있는 중의원의 책꽂이에서 동의보감을 직접 보았다.

허준 선생은 동의보감에 건강을 유지하려면 정·기·신을 제대로 보존하라고 썼다. 또 「도득기정, 의득기조」라고 해 조섭양생이 어떤 약보다 좋다고 했다. 조섭양생을 중심으로 하는 섭생의학은 오늘날도 한의학의 기본 원칙으로 강조되고 있다.

시안에 있는 중의학원에서 만난 노중의는 중국사람들이 읽고 있는 「양생보전」중 다음과 같은 글귀를 일깨워 주었다. 양생의 일곱가지 원칙이다.

첫째, 쓸데없는 말을 삼가 기운을 안으로 키운다. 둘째, 색욕을 너무 탐하지 말고 정기를 기른다. 셋째, 맛있는 음식을 과식하지 않음으로써 혈기를 고르게 한다. 넷째, 남녀관계시 사정을 자제해 머리를 좋게 한다. 다섯째, 화 내는 것을 삼가해 간의 기운을 키운다. 여섯째, 좋지 않은 음식을 피해 위장의 기운을 돋운다. 일곱째,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아 마음의 기운을 기른다.

조섭양생의 어려움도 들었다. 명리를 버리지 못하고 너무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할 뿐아니라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쓸데없는 취미와 잡기에 빠져 정신이 산란해진다는 것이다.

이같은 생활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열두가지 습관을 없애라는 「12소」의 원칙도 일러주었다. 즉 ▲소사 ▲소념 ▲소욕 ▲소사 ▲소어 ▲소소 ▲소수 ▲소락 ▲소희 ▲소노 ▲소호 ▲소오의 원칙이다.

다시 말해 생각이 많으면 정신이 어지럽고, 염려하는 바가 크면 뜻이 흩어지며, 욕심이 많으면 마음이 혼미해진다는 것이다. 또 일이 많으면 피로하고, 말을 많이하면 기가 떨어지며, 너무 많이 웃으면 오장이 상하고, 근심이 많으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정도이상으로 즐기면 뜻이 넘치며, 기쁨이 넘쳐도 좋지 않다는 말이다. 노여움이 커도 마음을 정할 수 없으며, 좋아하고 미워함도 지나치면 좋지 않다는 얘기였다.

고혈압, 당뇨병 등 심신병 환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 오늘날 중국의 한의학에서 말하는 조섭양생의 길을 터득해 보는 것도 지혜가 될 것이다.<허정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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