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논리로 접근 위기본질 설명 부족/재벌기업·금융기관 등 위기 진원지는 외면한채 3당 모두 사실상 금융실명제 폐기에 앞장선거일을 앞두고 3당의 경제정책은 현안문제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가장 뜨거운 논쟁은 현 경제위기의 책임공방이고 다른 하나는 금융실명제 보완 문제이다.
전체적으로 3당의 문제인식과 접근방법은 경제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이고 책임을 공감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쪽이기 보다는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중심이다.
현재의 경제위기의 원인과 관련하여 한나라당은 정부의 현실인식 부족과 정책실기, 선단식 기업경영, 국민과소비 등을 들고 있다. 국민회의는 지도자 역량 부족과 일관성 결여, 미비한 상황에서의 외환시장 개방, 국민신당은 단기성 부채과다, 고임금 고물류비용 등 기업환경 악화 등을 들고 있다. 모두 현위기의 일단을 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위기의 본질을 설명하는데는 실패하고 있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일차적으로 외국으로부터 불신받고 있는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이 문제이며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누적은 재벌의 방만한 차입위주 경영과 관치금융 및 정경유착에 있다. 재벌의 방만한 차입위주 경영은 총수 1인에 의사결정권이 집중된 소유지배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의 책임은 1차적으로 금융기관과 재벌의 이권추구경영 그리고 정부와 정치권에 책임이 놓여져야 한다. 3당 모두 이러한 분석이 결여된 채 김영삼정부와의 관련도를 놓고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잘못이다.
이는 대선에서 득표수를 늘리기 위한 정치적 공세로는 의미있을지 모르나 경제위기의 본질을 해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데는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가 우려하던 정치논리로 경제를 풀어가는 대표적인 예인 것이다.
금융실명제에 대하여 3당 모두 정도차이가 있을 뿐 사실상 폐기하자는데 앞장서고 있다. 한나라당은 금융실명제를 대폭 보완하여 대체입법을, 국민회의는 IMF 관리기간중에 전면 유보를, 국민신당은 대폭 수정 보완을 주장하고 있다. 무기명장기채 발행에 대하여 3당은 모두 이를 허용하자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현재의 위기가 마치 금융실명제에 기인하는 것으로 치부하는, 검증안된 사실을 근거로 하는 정치적 득표공작으로밖에 볼 수 없다.
현재의 위기는 금융실명제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기관의 부실채권과 재벌의 방만한 차입경영에서 비롯된 것이다. 3당이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금융실명제 해제로 지하에 묻혀 있는 30여조원의 자금이 산업자본으로 나오기를 기대한다는 것인데 세금을 피해 다니는 지하경제라도 장롱속에 들어 있지 않는한 이미 금융권에서 산업자금으로 돌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다지 효과가 없다.
무기명 장기채를 만들어 놓으면 다른 부문에서 활동하고 있던 자금이 탈세를 목적으로 이곳에 몰릴 가능성은 있다. 이것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탈세를 조장하고 변칙 증여와 상속을 공인하여 과거의 정경유착을 다시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국회에 계류중인 자금세탁방지법과 금융실명제 보완안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정치권은 현 위기 타개책의 우선순위와 경중을 잘 알고 있지 못하다. 지금의 위기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책의 경중이나 우선순위가 잘 정리되어 나오지 못하고 그 반대로 지엽적인 대안들이 산발적으로 나오고 있을 뿐이다.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면 당연히 관치금융을 해소하여 금융기관의 자율성을 높이는 방안이 제시되어야 하고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만들어낸 재벌의 이권추구형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총수 1인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방안이 나와야 한다.
이러한 일들을 위하여 내년부터 3∼5년간 무엇을 할 것인지 경제성장률은 얼마나 낮추고 이 때 발생하는 실업자의 대책은 무엇이며 국민은 저축을 얼마나 늘여야 하는지 등에 대한 경제적 대책이 필요하다.<강철규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강철규>
◎모순되는 공약 남발/M&A하면서 고용 창출하겠다?
『정리해고는 어쩔 수 없지만 고용안정은 철저히 보장하겠다』 『인수 및 합병(M&A)이나 구조조정은 적극 추진하되 해고는 최대한 막겠다』 『대기업의 신규사업 진출은 완전히 자율화하면서 중소기업 업종은 보호하겠다』 『공장용지는 충분히 공급하더라도 환경의 질은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하겠다』
15대 대선 후보들의 공약 가운데는 따로 떼어놓고 보면 좋은 말로 들리지만 관련분야와 연결해 분석하면 모순되는 주장이 적지 않다. 특히 모순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후보측이 이해당사자들의 표를 의식해 어쩔 수 없이 끼워넣은 공약도 상당수다.
3당 후보들은 노사문제와 관련해 양측에 모두 「듣기 좋은 소리」를 하고 있다. 후보들은 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리해고제 등 현 노동법의 기조를 유지하고 M&A 등을 통한 산업구조조정을 적극 지원한다고 밝혔다. 「기업구조조정특별법」과 대통령 직속의 「구조조정기획단」을 만들고(이회창 후보), 관련 법규를 고쳐 구조조정을 쉽게 한다(이인제 후보)고 약속하고 있지만 이때 발생할 잉여인력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거의 없다. 후보에 따라 100만∼300만명의 새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약속이 그나마 구체적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당장 시급한 것은 새 일자리를 만드는게 아니라 실직자를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최영기 선임연구위원은 『구조조정이나 M&A과정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규모 실업자 처리방안을 명문화하지 않을 경우 해고자 최소화 공약이 지켜질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기업합병 과정중 회사에 의한 노동자 정리해고가 적법하다는 판례도 있어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중소기업이나 대기업 양측 모두에게 지원책을 약속하면서 상호모순되는 공약을 남발하는 경우도 많다. 세 후보는 재벌의 상호출자 등을 통한 문어발식 확장을 막겠다고 하면서도 신규사업 진출에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김대중 후보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진흥법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는 미지수다.
몇년간 초긴축 예산이 필요한 시점인데도 각 분야마다 엄청난 액수의 정부지원을 강조하는 것도 문제다. 한나라당은 5년간 중기 지원자금 20조원을 투자하고 농어촌구조조정 등 수십조원이 들어가는 국책사업의 투자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각종 기금이 방만한 운용과 재정고갈로 한계에 부딪혀 있는 상황을 무시하고 새로운 기금을 만들거나 기존기금을 확충하겠다는 공약도 있다. 국민회의는 중기지원과 관련, 5,000억원 규모의 어음보험기금을 신설하고 신용보증기금과 기술신용보증기금 등의 정부출연 비율을 50%이상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공무원의 3분의 1을 줄이겠다는 이인제 후보를 필두로 3인이 모두 「작은 정부」를 약속하면서도 공무원 표를 의식, 구체적인 실천책은 제시하지 못하는 것도 비슷한 사례다.
또 IMF구제금융 이후 어려워진 경제상황을 반영하듯 각 당의 기존 환경공약과 모순되는 경제공약도 봇물터지듯 나오고 있다. 이회창 후보는 특별법을 제정해 지방자치단체가 중소기업의 공장용지를 공급하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이인제 후보도 산업용지를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 공장용지공급촉진법을 제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선진국 수준으로 환경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공약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환경단체들의 주장이다.<이상연 기자>이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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