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노」 「완충지대(Buffer Zone)」 「붕괴」 등은 지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냉전시대의 용어들이다. 2차대전 종전후 새로운 국제질서가 태동하는 혼돈기와 양극체제가 충돌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들이다.그런데 이런 말들이 올해들어 다시 등장했다. 과거와의 차이점은 「정치·안보」를 거론하는데 쓰이던 말들이 경제문제를 다루는데 사용되고 있다는 것 뿐이다. 태국에서 시작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으로 전염된 금융위기는 「도미노」가 돼 한국을 쳤다. 미국으로서는 세계 11위 경제규모인 한국의 「붕괴」도 문제지만 더 큰 우려는 경제대국 일본에 미칠 파급효과이다. 일본과 미국은 「순치의 관계」이다.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린 법. 한국은 또 다시 무너지는 도미노를 막을 「완충지대」가 됐다.
이번에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몰려온 것은 경제의 유엔군격인 국제통화기금(IMF)이다. 이들은 과거 유엔군을 통솔했던 미군처럼 한국으로부터 지휘권을 건네 받았다. 안보에 이어 경제 주권마저 넘긴 우리의 상실감은 크다. 자만의 허를 찌른 위급사태 앞에서 국내의 기득권 세력들은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더니 외부에서 희생양을 찾아냈다. 미국이 이 틈을 타 한국경제를 완전히 지배하려한다는「미국 음모론」이 그것이다. 이같은 국수주의나 반미주의의 팽배는 우려 수준을 넘어 위태로울 지경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즉각 엄청난 역효과를 자아내고 있다. IMF 구제금융에도 불구하고 외환사정이 악화하는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뉴욕타임스는 11일 서울거리의 번데기장사까지 「IMF 치욕」을 초래한 미국을 욕한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누가 욕을 먹으면서도 돈을 빌려 줄까? 천사나 자선사업가가 아닌 미국인들은 이제 「싫으면 그만 둬」라고 단호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주한미군이 꼭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만 주둔하느냐는 논쟁은 아직도 끝없이 계속되고있다. IMF지원을 둘러싼 음모론도 한동안 끊이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당장 아쉬운 쪽이 우리라는 사실이다.<뉴욕>뉴욕>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