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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토론의 시점(김성우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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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토론의 시점(김성우 에세이)

입력
1997.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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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위기라고 해서 새 대통령을 뽑지 않을 수도 없다. 경제가 위기일수록 나라를 망치지 않을 새 대통령을 뽑지 않을 수 없다.세 대통령 후보의 TV합동 토론이 선거일을 나흘 앞두고 14일 한차례 남았다. 후보자들로서는 마지막 결전의 한판이요 유권자들로서는 마지막 결단의 한마당이 될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 TV가 등장한 것은 1952년부터다. 민주·공화 양당의 당대회를 TV가 처음으로 중계했다. 민주당 후보이던 스티븐슨은 대중연설파여서 TV를 경시했다. 자기 연설에 직접적으로 반응하는 청중앞에 서는 것이 좋았다. 그 명연설이 TV앞에서는 원고를 읽는 식이 되어버렸다. 공화당 후보이던 아이젠하워도 TV를 혐오했다. 카메라앞에 세워놓으면 그 파안의 얼굴도 굳어져 버렸다. 연설문을 읽어내려가는 것도 아주 서툴렀다. CBS TV가 두 후보끼리의 토론을 제의했을 때 거부한 것은 아이젠하워 쪽이었다.

대통령후보간의 TV토론이 처음 성사된 것은 1960년이다. 거의 무명에 가깝던 케네디가 8년동안이나 부통령이던 닉슨을 누르고 스타가 된 것은 TV 덕택이었다. 이때 닉슨이 득은 적고 실만 클 것이 뻔한 TV토론에 왜 응했는지 주위의 참모들도 놀랐다. 아무와도 의논하지 않고 혼자 결정한 것이었다.

미국에서의 대통령후보 TV토론은 이 첫 시도의 영향이 너무 컸기 때문에 서로 기피를 하다가 재개된 것은 16년뒤인 1976년의 일이다.

케네디와 닉슨의 첫 토론때 두 후보는 모두 얼굴 분장을 거절했다. 상대방이 승낙은 해놓고 실제로는 분장을 안할는지 모른다. 그러면 이튿날 신문에 한쪽은 분장, 한쪽은 거절이라고 날 것이고 분장한 쪽은 타격을 입는다. 케네디는 햇볕 따가운 캘리포니아의 유세에서 막 돌아와 얼굴이 타 있었다. 닉슨측은 케네디가 햇볕에 타는 약을 일부러 바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셰이브스틱이라는 파운데이션으로 얼른 닉슨을 화장시켰다. 케네디측은 또 그들대로 얼굴이 반짝이지 않게 하기 위해 최소한의 분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맥스팩터의 크림을 엷게 발랐다. 맥스팩터의 크림이냐, 셰이브스틱이냐, 이 양단간에 미국과 자유세계의 미래가 달려 있었던 것이다.

몇년 뒤 재출마의 의사를 굳힌 닉슨은 CBS 프로에 출연하면서 1960년 토론 프로를 담당했던 프로듀서에게 분장에 대해 물었다. 그 프로듀서는 『최고의 분장은 자연의 햇볕에 타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닉슨은 그 후 태양이 내리쬐는 새크라멘토로 집을 옮겼다.

우리나라에서의 이번 후보 TV토론은 대통령선거 사상 획기적인 일로 기록될 것이다. 비록 여러 미비점이 있다고는 해도 돈 안 드는 차가운 선거전으로 양태를 바꿔놓은 공은 크다. 유권자의 70% 이상이 이 TV토론으로 지지자를 결정하겠다는 조사결과만 보아도 그 위력을 알 만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두 차례 진행된 이 토론의 내용이 과연 유권자의 표를 유혹할 만큼 솔깃한 것이던가. 후보자들의 색채를 분명히 식별할 만큼 차별성이 있었던가. 이념이나 정책상의 쟁점으로 부각된 것이 무엇인가. 국민들은 당장 국가 부도 위기의 불안에 떨고 있는데 엇비슷한 뜬 소리들의 나열 뿐 확실한 신뢰를 심어준 후보가 아무도 없다. 남은 한차례의 토론에서도 큰 기대를 걸 수 있을 것같지 않다.

이럴 때 국민들은 TV토론에서 무엇으로 후보들을 판별해야 할까. 달변대 교변, 미사대 허사의 경연장에서 자칫하면 언변 하나가 판단의 기준이 되어버리기 쉽다. 지금 우리는 웅변가를 뽑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입심 센 사람이 일힘 센 대통령인 것도 아니다. TV 카메라 앞에 얼굴을 분장하듯 이들은 TV속에서 국민앞에 말을 분식하고 있다. 「3김청산」이나 「정권교체」나 「세대교체」만으로 금방 경제가 회생될 것처럼 분칠을 하고 있는 것이다.

TV토론에서 정책의 차별성을 감별하기 어렵다면, 또 그 공약들을 다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면, 결국은 각후보들의 본바탕을 토론과정에서 찾아내 비교해 보는 수 뿐이다. 교양, 성격, 도덕성, 정직성, 소명감, 역사관, 가치관, 애국정신 등등이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의 본바탕이요 그 인물됨의 본얼굴이다. 이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최상의 분장은 저절로 햇볕에 그을린 본 얼굴이라고 했다.<본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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