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주가 영하 10도 아래로 곤두박질 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경제에는 이 보다 더한 혹한의 내습을 알리는 징후가 이곳 저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금융시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자금시장에서는 시중금리가 법정 상한선인 25%까지 치솟으면서 거래가 중단됐다. 외환시장에서는 원화환율이 매일 신기록을 수립하면서 미달러당 1,500원을 돌파했다. 증권시장은 주가지수 400선이 맥없이 무너졌다. 이러한 금융시장의 움직임은 금융공황의 조짐을 보이면서 규모와 업종에 관계없이 모든 기업들을 부도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나마 경제가 돌아가게 하는 유일한 활로인 수출마저 신용장이 있어도 자금공급이 되지 않아 중단위기에 몰리고 있다. 어떻게 해야 경제가 정상을 회복할 수 있을까. 신뢰라는 단어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경제활동과 관련하여 신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간접자본으로 일관성과 투명성을 기초로 한다. 우리경제는 적어도 다음 네가지 부문에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초단기적으로 우리경제의 화급하고도 중차대한 과제는 자금 흐름을 원활히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국민이나 금융기관이 정부를 믿어야 한다. 금융기관간의 자금흐름이 막히고 국민들의 예금인출 사태가 멈추지 않는 것은 정부 말을 믿으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한은특융, 예금 및 금융기관간 거래의 보증, 부실 금융기관의 단호한 조기정리, 국공채발행 등 금융과 재정수단을 총동원하는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서라도 국민과 금융기관들을 안심시키고 그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IMF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러려면 IMF와 합의한 사항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 시민단체 등에서 IMF와의 합의사항에 대해 벌써부터 재협상을 거론하는 것은 외국인들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다. 일단은 IMF와의 합의사항을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 첫째고 합의사항의 조정은 상황에 따라 후에 거론할 일이다. IMF와의 합의사항을 이행치 않을 경우 구제금융은 끊길 것이고 외국 투자가들은 발길을 돌릴 것이다. IMF의 구제금융이 순조롭게 다 들어오고 전액을 단기외채 상환에 쓴다해도 여섯 달을 견디기 힘들다. 외환보유고가 바닥나고 내년 상반기까지도 외국인들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할 경우 우리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지 상상해 보자. 중기적으로는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금융산업의 구조조정은 제일 중요한 현안 과제다. IMF는 금융산업과 금융기능의 정상화를 통해 한국경제를 복원시키려 하고 있다. 기업의 구조조정도 절박하다. 부실한 재무구조의 개선, 수익성 없는 사업의 정리와 이에 따른 인력조정, 기업지배구조의 개선, 투명한 경영을 위한 제도정비도 우리 기업들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구조조정을 통한 신뢰와 경쟁력 확보로 외국 투자도 끌어들이고 경상수지 흑자도 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미래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이는 지도자, 정치계가 큰 몫을 담당해야 한다. 경제개혁 이외에도 원칙과 상식이 통용되고 법이 지켜지는 사회, 돈이 적게 들면서도 제 몫을 다하는 깨끗한 정치, 창의력 있는 인재를 키워내는 교육제도를 만들어야 진정으로 경쟁력 있고 살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다. 비전 제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의식과 제도의 개혁, 국민결집의 청사진 제시가 이루어지고 실천에 옮겨져야 한다.
우리경제가 이 지경이 된데 대해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을 엄격히 물어 재발을 막아야 한다. 그러나 조심할 일이 있다. 애국심이나 민족주의를 지나치게 앞세워 국수주의적인 자세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또 우리의 방심과 관리능력 부족을 개방의 폐해로 돌려 보호주의나 폐쇄경제로의 회귀 경향이 이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소비 절약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자기보다 높은 수준의 소비, 자기 맘에 들지 않는 소비행태를 무조건 매도하는 전체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인 분위기로 흘러서도 안된다.
세계는 우리가 위기를 어떻게 수습하는지, 수습할 능력이 있는지 주시하고 있다. 우리의 잣대가 아니라 자기네의 잣대를 갖고 평가한다. 한국식 경제운용, 한국식 기업경영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나라 안팎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 이외에 난관돌파의 출구가 없다면 우리 모두 어떻게 해야 할지 냉철히 판단하고 국민, 기업, 정부 모두가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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