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부터 21일까지 서초갤러리/“선은 무한하면서 찰나적이고 획은 일회적이면서 다양하다”/인격예술로의 고답적 서예 거부/한국화와는 또다른 세계 구현서예는 인격의 예술이라고 한다. 그래서 글씨에서는 인격이 묻어 나온다고들 이야기 한다.
하지만 예술의 가치관에 대한 인식도 「변했다」고 말하는 이 시대에 과연 그 고답적인 「인격의 예술」에 애정을 바칠 사람은 얼마나 될까. 서구에서 한국의 「수묵」기법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하게 일어나고 있다 한들, 그 진부한 양식은 이제 「희미한 옛사랑의 추억」에 지나지 않는다.
4월에 출범한 서예작가 집단 「물파」그룹은 인격의 예술로서의 서예를 거부하고 「글자(서)의 예술」 「필묵의 조형예술」을 지향하고 있다. 이들은 선의 무한과 찰나성, 획의 일회성과 다양성을 서예의 4가지 특성으로 삼아 자유로운 정신의 조형언어로 서예를 택했다. 이제 스승의 글씨를 베끼는 방법의 고답적 서예, 화석화한 서예는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12일부터 21일까지 서초갤러리(02―523―1213)에서 열리는 창립전에 나온 김구해 김순욱 노상동 유재학 백현수 석용진 손병철 여태명 이민주 이숭호 조용철 한병옥 황석봉 등 13인의 회원작품은 이들의 지향을 뚜렷히 말해준다.
한자 「문」을 조형적 틀로 사용, 한자 본연의 맛을 살리면서도 추상적 조형미를 느끼게 하는 석용진씨의 작품 「문」, 종이에 칼집을 넣어 입체감을 준 여태구씨의 「연록」, 초서와 전각을 응용해 담백한 현대서예의 맛을 전달하는 이숭호씨의 「대도지행」, 황토액자를 소재로 활용한 한병옥씨의 「율」, 호방한 붓질로 수묵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황석봉씨의 「심」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출품작은 수묵을 쓰는 한국화와도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획의 운용에 상당한 무게 중심이 있다는 측면에서 서예가의 작품다운 면모를 잃지 않고 있다. 물론 몇몇 작품에서 보여지듯 서예의 체취를 전혀 느낄 수 없는, 추상적인 한국화와도 구분되지 않는 모호한 작품 등은 극복해야 할 과제로 남는다.
하지만 침체에 빠진 전통 서단에 이 그룹의 출현은 분명 「의미있는 반항」임에 틀림없다.<박은주 기자>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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