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렁하다. 마음과 몸과 머리가 다 썰렁하다. 우리 회사는 괜찮을까 하는 불안으로 마음이 썰렁하고, 사무실의 온도가 내려가니 몸이 썰렁하고, 정치와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혼미하니 머리가 썰렁하다. 세모 분위기까지 겹쳐 더 썰렁하다.연말인데도 한 잔하자는 전화도 없다. 어쩌다 『별일 없니』라고 묻는 친구의 목소리도 썰렁하게 들려온다. 썰렁하지 않은 곳이 없다. 백화점이나 극장이나 술집이나 공항로비나 고아원이나 거리유세장이나, 그 많던 사람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신문과 방송의 뉴스나 사설, 컬럼도 온통 썰렁한 것뿐이다. 썰렁하지 않은 곳은 아마 갑자기 사람이 많아진 회사 구내식당이나 지하철, 포장마차 정도일 것이다.
「썰렁하다」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좀 추운 듯하다. 갑자기 놀라 가슴 속에 찬 바람이 도는 것 같다. 텅 빈 듯하다」라고 세가지로 설명돼 있다. 춥고 놀랍고 텅 빈 느낌, 참으로 요즘의 세상 분위기를 정확하게 표현한 풀이인 것 같다.
그럼 썰렁하지 않으려면? 기대와 희망이 있어야 할텐데 걱정과 불안밖에 없다. 웃을 일이라도 있으면 나으련만 유머는 없고 루머만 있다. 세상이 온통 코미디인데 웬 유머? PC통신에 떠다니는 유머는 우리의 썰렁한 자조다. 쓴 웃음이다. 정치는 결국 국민을 즐겁게 해주는 것일텐데 그것이 현실의 코미디가 돼버린 작금의 코미디적 상황. 현실이 돼버린 코미디는 비극이다.
곳간에 쌀이 얼마나 남아 있는 지도, 남이 열쇠를 가져가는 것도 모른 채 술에 취해 있던 창고지기, 곳간을 거덜내 식구를 굶게하고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나 몰라라 하는 주인.
새 주인을 맡겠다는 사람들은? 어제의 적을 오늘의 동지로 삼고, 교묘한 논리로 말을 뒤집고, 제 눈의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의 티만 보려는 사람들, 급기야 대통령후보 아들의 키 5㎝ 때문에 후보 중 한 명이 사퇴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진짜 세계적 코미디가 될 것이다.
안방 장롱에 숨겨두었던 달러와 엔화를 도둑맞고도 안 맞았다는 부자들, 잠깐 재미로 수천만원대 포커를 했다는 검사, 눈치없이 세비를 인상했다 눈치끝에 반납한 국회의원들. 참으로 웃기는 요즘의 코미디들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신세한탄만 하고 있을 때냐고,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언론이 앞장 서야 하는데 썰렁함이나 조장하고 코미디 타령이나 하고 있냐고 욕할지 모른다. 그러나 너무 화가 난다. 그래서 이렇게 화풀이라도 하고 나니 좀 시원하다. 아니 사실은 더 썰렁하지만. 썰렁하지 않게 해 줄 사람 누구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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