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돌뿌리에 채인 것일뿐…/김열규 인제대 교수·국문과(아침을 열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돌뿌리에 채인 것일뿐…/김열규 인제대 교수·국문과(아침을 열며)

입력
1997.12.10 00:00
0 0

부도와 도산 사태, 돌연한 영업정지, 그리고 바야흐로 예상되는 대량실업과 물가고 및 화폐가치의 급락 등은 이미 경제공황이기 족하다. 덩달아 배신감, 분노, 수치심 등에 겹친 공포, 불안, 그리고 좌절이며 비애와 허탈감마저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이게 정신적 공황이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그러나 돌이켜 보면 결코 돌연한 일은 아니다. 우리들은 이른바 고도성장과 정비례해서 서서히 정신적 파탄과 인격적 파산을 저질러 왔다. 노상 잔치판 벌이고는 흥청대다가 날벼락 불벼락 된벼락을 겹쳐서 맞은 꼴이다.

좀 안된 얘기로 시민적 차원에서는 과소비의 작태, 여가생활의 추태, 욕망추구의 저돌성 등이 미리부터 사회성을 짓이기고 있었고 사람다움의 지표를 먹칠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정부차원에서는 권력과 야합한 사욕이 직무며 직책을 압도했고 기업의 차원에서는 이윤과 야합한 탐욕이 경제를 우습게 여겨왔다.

국가전체로 허세와 과욕이 성취동기 행세를 해왔고 성과는 번갯불에 구워낸 콩일수록 구수하다고 했고 우물에서 길어낸 숭늉일수록 맛나다고들 했다. 졸속이 과속을 업고 치달려야만 능률이 높다고 해왔다.

정치만이 아니고 기업, 문화계, 사회단체 하다못해 교육계에서조차 횡행하는 전제는 이 사회에서 개인의 책임감이며 주체성을 박탈했다.

무절제한 욕구는 강박관념이었고 허장성세는 과대망상이었다. 인간적 「아이덴티티」는 끊임없이 권력, 돈, 허명과 바꿔치기 당했다. 온 사회가 분열증을 앓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때도 없지 않았다. 따져보면 대기업의 문어발이야말로 강박신경증이 아니었을까. 정부의 과잉간섭이며 감독 또한 비슷한 병증이 아니었을까. 방송매체의 도를 넘는 저질스런 연예며 오락프로는 편집광과 다를게 없지 않았을까.

새삼 돌아보아 종말의 묵시는 도처에 넘치고 있었지만 아무렇지 않게 무시당했다. 최근에 느닷없이 「폼페이 유물전」이 열린게 좀 암시적일 정도다.

그러다가 당했다. 만성적 위기를 불감하다가 마침내 당했다. 불벼락, 된벼락을 당한 것이다. 하지만 날벼락은 결코 아니다. 날씨는 이미 오래전부터 흐려지고 사나워져 있었던 것이다. 전깃불 켜놓은 방에서 귀막고 있었던 것뿐이다.

이제 이 참혹한 어제를 조목조목 따져야 한다. 그리하여 시민들의 참회의 제단 앞에 책임져 마땅한 자들을 꿇어 앉혀야 한다. 그래야 어제가 새날을 위한 발판이 된다. 아울러 오늘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 물어야 한다.

공자는 일찍이 망국의 대부와 더러운 돈 챙기는 자는 자기 곁에 오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더러운 돈까지 챙겨댄 일부 우리 망국의 대부들의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의 상처를 욕된 채로 두라/우리의 눈물이 바다와 함께 마르게 하지말라』 전쟁터에서 죽은 W 오웬을 본따서 이같이 통곡해야 할까.

아니면 『괜찮대두, 다만 돌뿌리에 채인 것일뿐 이래두』라고 10월혁명에 대한 환멸을 노래한 에세닌의 흉내를 내는게 차라리 나을 것인가? 그렇다. 도리없이 오웬처럼 부르짖으면서도 필경 에세닌처럼 털고 일어서기를 마음먹는 것. 그게 대부도 아니고 대부도 아닌 우리들 시민의 최선의 선택이다. 공황은 공포나 불안보다는 자포자기며 실의 혹은 허탈 때문에 더 무섭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극복을 위한 동기는 쉬워야한다는 명제, 또 바보라도 능히 알아듣고 실천할 수 있는 계책이라야 위난을 당해서 드높은 효능을 발휘한다는 「바보의 증험론」을 되새기자. 그래서도 다들 돌뿌리에 채인 것뿐이라고 다짐하자. 무릎 까지고 피흐르면 무슨 대순가. 다함께 털고 일어서자. 피가 정히 많이 흐르면 그걸로 어제의 잘못을 지우는데 쓰자.

『항해하는 자는 침몰하는 항해술도 익혀야 한다』고 딜란 토마스는 노래했다. 이제 우리는 완벽한 항해를 위해서 겨우 침몰하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이를 악물자. 그러면 언젠가는 다들 털고 일어설 것이다. 『괜찮대두, 돌뿌리에 채인 것 뿐이었대두』라고 웃는 낯으로 말하면서….

그때가서 말할 수 있도록 하자. 슬픔을 딛고 일어선 자의 웃음이야말로 인간 최대의 미학이라고….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