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TV에서 흥미로운 장면을 봤다. 워싱턴과 인접한 버지니아주의 바로 서쪽에 있는 웨스트버지니아주에 사는 한 백인소녀와의 인터뷰였다.이 소녀는 최근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 친구들이 더이상 그와 놀아주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이 소녀의 엄마는 얼마전 흑인과 재혼했다. 친구의 부모들이 흑인을 양아버지로 둔 그와는 놀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이 「사건」은 이날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주재한 인종차별토론회에 보고됐다. 이처럼 미국의 요즘 화두는 인종문제이다.
이런 장면을 지켜보면서 미국이라는 나라는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또 다시 했다. 인권과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며 남의 나라에 이를 강요하기도 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원시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생각은 엉뚱하게도 최근들어 일고있는 우리나라의 반미감정에 미친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우리는 배후에서 치욕적 협상을 강요한 미국에 반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반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우방이라는 미국이 남의 집에 불이 나자 집안살림을 들고가려는데 분노하는 것인가. 혹시 큰 형님같았던 미국이 야박하게 구는데 대해 섭섭함을 느끼는 것은 아닌가.
미국사회 주류인 백인의 상당수는 지금도 18세기 초반의 의식을 갖고 자신들의 밥그릇 지키기에 열중이다. 미국내에선 흑인에 이어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계도 백인들의 이런 강자논리에 「찬밥」이 되고있다.
하물며 외국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한때 세계경제의 버팀목을 자부하던 미국은 더 이상 외국에 자선을 베풀기를 원치 않는다.
미국인들은 95년 멕시코에 대한 구제금융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여론을 반영한 의회의 거부로 미행정부는 의회지원이 필요없는 재무부의 외환안정기금을 사용했다. 한국에 대한 지원도 같은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자신들이 앞장서 만든 세계무역기구(WTO)가 최근 미국의 코닥 필름회사에 불리한 판정을 내렸다고 해서 WTO무용론이 등장하는 나라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를 「세계화 공포증(Globalphobia)」이라고 불렀다.
이런 미국이 우리에게 돈을 대줄 때는 어떻게 나올 것인지 자명하다. 우리가 미국에 「인도적」인 지원을 기대했다면 너무 미국을, 그리고 세계를 모르는 순진한 생각이었다.
『미국은 더도 덜도 아니고 남의 나라입니다』 어느 주미대사관 외교관의 말이다. 미국의 오만함을 극복하는 길은 더 이상 손벌리지 않겠다는 오기뿐이다.<워싱턴>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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