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금융 나서 첫 자율구조조정/석유화학·반도체·정보통신 등 과잉투자 타분야로 확산 전망/긴축시대 재벌들 인수여력 부족 외국인들 사냥 “예속화” 우려대우그룹의 쌍용자동차 인수는 국제통화기금(IMF)시대의 첫 자율적 산업구조조정 사례란 점에서 큰 시사점을 제공한다. 국내 4위 재벌(자산기준)이 6위 재벌의 주력업체를 인수함에 따라 재계판도에 큰 변화가 오게 됐고 특히 자동차산업에 대지각변동이 불가피해졌지만 대우의 쌍용자동차 인수는 무엇보다 앞으로 숨가쁘게 진행될 전면적 산업구조조정의 신호탄이자 중요한 선례의 의미를 갖는다.
35년간의 고도성장과정에서 산업구조조정은 여러 차례 시도됐다. 길게는 70년대초의 공업투자조정, 80년의 9·27조치, 80년대중반의 산업합리화정책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현대양행(현 한국중공업)을 대우에 넘긴 뒤 강제로 공기업화하고 자동차산업을 현대와 대우의 과점체제로 만든 9·27조치처럼 종전의 산업구조조정은 과잉·중복투자방지의 이름 아래 정부가 밀어붙인 「강제짝짓기」였다.
대우의 쌍용자동차 인수는 정부간여가 거의 없이 전적으로 해당기업과 금융권(채권금융기관)의 판단하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사실상 최초의 민간자율구조조정 성공사례로 평가된다. IMF 시대의 개막으로 정부의 개입공간이 없어진 상황에서 향후 진행될 대규모 구조조정에 「벤치마킹」이 될 수도 있다는 평가다. 쌍용자동차 주거래은행인 조흥은행의 장철훈 행장은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 주력사업을 스스로 정리하고 금융기관이 원리금상환혜택 및 추가자금융자을 통해 이를 지원한 이번 인수는 IMF시대를 맞아 자율적 산업합리화가 활발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금융기관들은 ▲1∼2.5%포인트의 금리감면 ▲5∼10년간 원금상환유예 ▲인수자(대우)에 1천5백억원 규모의 종자돈(시드머니)지원 등 금융혜택을 통해 대우의 쌍용자동차 인수를 뒷받침했다. 자동차의 부실로 쌍용이 쓰러져 거액의 부실채권을 떠안기보다는 다소 마진을 줄임(이자는 감면해도 계속 들어오기 때문에 불건전여신으로 분류되지 않는다)으로써 대형 부실채권의 발생을 예방한 셈이다. 조흥은행 위성복 상무는 『쌍용자동차 정리는 부도, 법정관리, 화의, 부도유예협약 등으로 기업이 쓰러지기 전에 미리 금융지원을 함으로써 기업과 금융이 함께 정상화할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됐다』고 말했다. 앞으로 전개될 산업구조조정은 과거 정부가 맡았던 주역을 기업과 금융이 대체하는 형태로 이뤄질 수 밖에 없다.
쌍용자동차 인수로 자동차산업에서 시작된 구조조정바람은 이제 금명간 전산업계로 확산될 전망이다. 대우경제연구소 이한구 소장은 『과잉투자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자동차 석유화학 반도체, 그리고 환율상승의 반사이익을 얻고는 있지만 조선 및 정보통신분야에서도 점차 구조조정바람이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부그룹의 반도체사업 진출유보도 「퇴출」은 아니지만 「진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구조조정의 효과를 갖는다. 특히 금융기관들의 자금지원거부로 동부가 반도체사업을 유보했다는 사실은 IMF시대의 산업구조조정은 금융을 통해 이뤄질 것임이 예고해 주는 대목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기업들은 이제 한계사업정리에 나설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긴축경제하에서 재벌이라도 선뜻 인수에 나서기는 어렵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외국자본이다. 주가하락 환율폭등에 적대적 인수합병(M&A)을 포함, 모든 시장진입장벽이 철거됨에 따라 외국인은 이제 적은 자본으로 무차별 국내기업사냥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자본의 국경이 없어진 IMF시대의 산업구조조정, 특히 중화학공업 구조개편은 따라서 장차 기간산업의 대외예속화란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이성철 기자>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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