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불안 우려불구 노동시장 변화 불가피/해고사태 회피 노력속 파견근로·탄력임금 검토를국제통화기금(IMF)이 우리 경제를 법정관리하기 시작하면서 벌집을 쑤셔놓은 상황이다. 고려증권이 쓰러지고 영진약품과 중공업왕국을 꿈꾸던 한라그룹이 또 최종 부도 처리되었다. 기업의 연쇄도산이 우려되는 가운데, 부실이 심한 국내 2개 은행이 내년 중반께까지 회생 가능성을 안보여주면 폐쇄조치하겠다는 것과 국내기업에 대한 외국기업의 적대적 인수합병에 관한 법률을 임시국회에 제출하기로 IMF와 비밀리에 합의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임창렬 부총리가 그동안 『IMF의 적대적 인수합병 요구에 저항했고 즉각적인 은행폐쇄는 논의한 바 없다』고 발언한 것을 생각하면 국민들이 완전히 우롱당하고 있는 느낌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18개 시민·사회단체는 성명서 발표 또는 모임을 통하여 경제파탄의 원인과 책임소재를 밝히기 위한 청문회 개최와 처벌을 강력히 요구하면서 분노하고 있다. 재벌과 재경원의 해체가 주장되고 있는가 하면, 노동시장을 유연화시키겠다는 합의와 관련하여 고용안정 대책의 마련도 요구하고 있다.
노동시장과 관련해 발표된 합의내용을 보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고하는 추가적인 조치와 함께 노동력의 재배치를 촉진하기 위하여 고용보험제도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돼있다. 이 정도의 합의야 원론적인 것이며, 합의가 설사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이 방향으로 나갈 수 밖에 없는 국제적 상황에 놓여 있다. 문제는 인수합병이나 구조조정에 따른 정리해고의 요건을 완화하는 입법 혹은 근로자파견법을 일정기간안에 제정한다는 등의 비밀합의가 있느냐 여부다. 현정부의 신뢰성이 크게 의심받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대다수 시민과 근로자들의 우려와 분노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몸도 굳어서 뻣뻣하면 치명적인 상태가 되는 것처럼, 노동시장도 부드럽고 연한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서 모든 선진국들이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하여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를 해제하고 있는 것이다. 즉,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추구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월13일 공포된 새로운 노동관계법도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와 방향을 함께하고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자칫 잘못하면 고용을 불안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 된다. 따라서 정리해고 등을 통한 대량해고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정책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다양한 고용형태를 활성화시켜 지속적인 고용창출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활동의 여건을 개선시켜야하며, 고용창출 효과가 큰 중소기업을 지속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대만이 중소기업육성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점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있다. 고용형태의 다양화를 위해서는 최근 논의되고 있는 파견근로제의 양성화도 조만간 이루어져야 하고, 계약제 및 시간제근로 등도 모색되어야 한다.
둘째, 내부 노동시장의 유연화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임금의 유연화가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 임금을 탄력적으로 변화시켜 고용조정을 가급적 피해왔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되는 퇴직금제도의 개선 또한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부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위해서는 세계화시대에 걸맞는 직업능력 향상을 위해서 인적자원의 개발에도 온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셋째, 가장 경직된 조직인 공공부문에서의 유연성제고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공공부문도 과감히 개방적 임용제도를 마련해야 하며, 인사제도도 사부문의 그것과 같이 효율성과 형평성을 제고시키도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실직자에 대한 신속한 취업지원을 위해 노동시장의 인프라 구축 등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국제통화기금의 경제신탁통치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경제주체 하나 하나가 책임을 통감하고 새로운 각오로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이 어디에 있으며 어떤 집단과 세력에 주된 책임이 있는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우리의 병도 진단을 잘해야 처방이 잘 나오는 것처럼, 국가부도사태도 진단을 잘 해야 좋은 처방이 나오게 되어 있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니 과거는 덮어두자는 논리는 책임회피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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