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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유세와 연극/프란시스코 카란사 한국외대 교수(한국에 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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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유세와 연극/프란시스코 카란사 한국외대 교수(한국에 살면서)

입력
1997.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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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의 신문지면을 장식하는 단어는 단 두가지다. 하나는 IMF고, 다른 하나는 선거다. 한국은 분명 내 나라가 아닌데도 정이 들어서인지 한국과 관련된 일에 관심이 쏠리는 것을 보면 역시 「타향도 정들면 고향」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어떻게 해야 좀더 절약할 수 있을까, 누가 다스리면 좀 더 나아질까를 열심히 생각한다. 투표권이 없지만 한국인이 다 된 것 같다.TV 뉴스는 해고불안에 떠는 직장인들의 그늘진 얼굴, 내년은 더 힘든 한해가될 것이라는 경제전문가들의 인터뷰, 우리집은 이렇게 절약하고 있다는 가정주부들의 알뜰살림 지혜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뉴스 다음에 『나만이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외치는 대통령 후보들의 모습도 등장한다.

재미있는 것은 IMF 관련 뉴스는 절약을 강조하고 있지만, 선거관련 뉴스는 돈을 쓰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돈 안쓰는 선거를 한다지만, 전국 곳곳의 현수막 포스터 등 어느 하나 돈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으니 선거운동을 하면서 절약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뉴스를 보면서 「정치인들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TV를 통해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쓰는 것은 똑같다.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만들기 위해 의상 조언가는 후보의 옷과 셔츠, 넥타이를 세심하게 고른다. 분장사는 후보자 얼굴의 약점을 감추고 장점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가 하면, 문필가는 시청자를 감동시킬만한 멋진 연설문을 준비한다. 또 군중 심리에 정통한 심리학자는 연설할때 어느 대목에서 손을 흔들고, 어느 대목에서 카메라를 바라보아야 할지 조언을 한다. 후보들의 토론이 있는 날이면, 이런 질문에는 이런 표정을 짓고 답변은 이렇게 하라고 충고한다. 그런 모든 준비과정을 거쳐 후보자는 치밀한 계산 끝에 유권자를 만난다.

이런 점에서 선거는 연극과 흡사하다. 배우는 희곡에 따라 분장을 하고 각본대로 연기하고 말한다. 물론 배우의 뒤에는 분장사, 발성법 전문가, 연기지도자, 조명담당자와 같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얼굴들이 있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유세장이라는 무대에 후보들이 올라갈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작업하는가. 연극의 막이 내리면 무대 위의 배우들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선거가 끝나면 후보들도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결국 관객은 연극배우가 배역에 충실했느냐만 따져서 훌륭한 배우냐 아니냐를 판단하지 배우의 평소 모습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도 그렇게 판단해서는 안된다. 유권자들은 무대 위의 후보가 무대 밖에서도 똑같은가를 파악해야 한다. 문제는 무대 밖의 후보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를 미처 알아내기도 전에 한 사람을 선택해야만 한다는 것이다.<페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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