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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촌에는 약이 없다(유라시아 장수촌을 찾아서: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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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촌에는 약이 없다(유라시아 장수촌을 찾아서:14)

입력
1997.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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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적게 먹기때문에 오래산다/중앙아시아와 회교의학/동로마제국 멸망이후 8∼11세기 회교의학 전성기/오늘날 서양의학 기초닦고 중국의학에까지 큰 영향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타슈켄트, 사마르칸트, 알마티 지역은 모두 반 사막으로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운 전형적인 내륙형 기후의 고장이다. 방문시기가 8월이어서 불볕더위로 시달렸지만 밤에는 담요를 덮지 않으면 잠들기 힘들었다.

이 고장에는 여러 민족이 살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에는 우즈베크족이, 카자흐스탄에는 카자흐족이 많이 산다. 도회지에서는 우리나라와 다름없는 현대적 생활을 하지만, 시골에는 양을 치고 말을 잘 타는 유목민들이 산다. 종교적으로 볼 때 이들은 회교도이다.

회교의학은 오늘날 서양의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서양의학의 시대구분에 따르면 그리스·로마를 중심으로 발전한 고대의학은 서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중세의학의 시기로 접어든다. 그후 히포크라테스와 갈렌으로 대표되는 서양의학은 동로마제국마저 망하자 아라비아의학 내지 회교의학이 자리를 이어받아 전성기를 맞게 된다. 정치사의 구분에 따라 이 시기를 정확히 계산하면 서기 732년부터 1096년까지 회교의학이 세계의학의 중심적 역할을 하면서 의학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회교의학은 정치·종교적으로 강력한 회교문화권의 지원아래 그리스·로마의 의학경전을 보존하면서 알코올 증류법, 연금술로 대표되는 의학체계의 발전을 가져왔다. 회교의학은 그후 서유럽에 도입돼 르네상스운동이 본격화한 15세기까지 융성했다.

필자는 중앙아시아를 방문하면서 서양의학의 발달과정에 기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회교의학의 실체를 파악하고자 힘썼다. 우리가 말하는 중의학은 한족을 중심으로 체계화한 전통의학이다. 그러나 중의학의 역사나 전통에도 아라비아 또는 회교의학의 요소가 많이 담겨있다.

◎회교의학의 특징/난치성 피부병치료제 등 연금술 관련 의약품 많아/탕약은 찾아보기 힘들고 대부분 환약·바르는 고약

중국에서는 회교를 후이후이(회회)교 또는 칭전(청진)교라 부른다. 회교사원은 칭전(청진)사라고 한다. 한족 중에도 회교도가 있다. 동·서양간의 정치·문화적 교류가 빈번했던 중앙아시아에는 회교사원이 많다. 이 곳에서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전통의학은 한족의 중의학과 이론이나 임상측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는 회교의학이다.

비단길의 요충지로 알렉산더대왕의 원정군이 들어와 헬레니즘문명의 영향을 받았던 사마르칸트와 타슈켄트를 비롯한 중앙아시아의 여러 곳에는 중의학과 다른 회교의학의 요소가 많이 남아있다.

오늘날에도 시안(서안)에서 둔황(돈황)을 거쳐 카스피해에 이르는 중앙아시아의 여러 고장에는 회교도들이 살고 있다. 원나라 때부터 공식으로 포교가 허용된 칭전교의 사원과 칭전교도들을 베이징(북경)에서도 볼 수 있었다.

회교의학은 기원을 따져보면 회교도 고유의 의학은 아니다. 아라비아 사람들만의 의학도 아니다. 광역의 의미로 보면 9∼14세기에 걸쳐 유럽과 아시아지역에서 국제어로 통용됐던 아라비아말로 기록된 의학을 말한다. 당시 유라시아 지역에서 아라비아 말은 비단길과 관계가 깊은 페르시아 말과 경쟁을 벌였다.

서기 622년에 해당하는 회교 원년에 로마사람들은 헤지라보다 훨씬 앞서 카르타고에 석류를 소개했고 1세기경에는 중국에도 전파했다. 또 이란이나 아라비아에서 알파파라 부르는 거여목도 이미 기원전 2세기경에 중국에 알려졌다. 거여목은 중국에서 대원국이라 불렸던 페루가나에서 말에게 먹이던 사료였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장젠(장건)은 대원국에서 좋은 말들을 들여왔다.

당시의 전쟁은 말을 탄 기마부대에 의해 좌우됐기 때문에 한나라 무제는 좋은 말을 얻기 위해 두 번씩이나 원정을 갔다. 3세기경에 이르자 페르시아만과 중국의 광둥(광동)성을 잇는 바다의 비단길이 생겨났다.

이 항로를 통해 대마, 아마, 호두, 대나무 같은 것들이 중국에 들어왔다. 남송때 이르러 수도가 항저우(항주)로 옮기자 해상교역은 더욱 번창했다. 아직도 중의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리쉰(이순)의 「해약본초」를 보면 중동이나 서역에서 나는 여러가지 약재가 실려있다. 중국사람들은 해상교역을 통해 얼룩말, 기린, 타조 같은 동물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나 중국인들에게 가장 흥미있었던 것은 회교의학과 약재였다. 유향, 몰약, 테리야크 같은 약재는 원나라 때부터 우리나라에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테리야크는 기록에 따르면 비잔틴왕실이 중국조정에 바친 것으로 돼있다. 이외에도 포도 참깨 마늘 양파 콩 후추 박하 땅콩 수박 당근 등은 모두 아라비아 지역에서 수입된 것이다. 「본초강목」에 들어있는 많은 약은 아비젠나가 쓴 「의학대전」의 내용과 흡사하다.

회교의학과 한의학은 이론이나 임상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오늘날에도 중앙아시아에는 백전풍이나 우피선 같은 난치성 피부병을 고치는 피부약이 유명하다. 또 연금술의 발전에 힘입은 여러 가지 약들이 많다.

또 정맥류에 잘 듣는 약도 있고, 골절환자를 수술하지 않고 고치는 치료법도 있다. 그러나 이 고장에서 탕약은 찾아보기 힘들다. 환약 또는 바르는 고약이 대부분이다.

◎장수촌 주민의 약복용/현대 화학요법 약은 약효만큼 부작용 커/장수촌엔 약 드물고 그나마 자연생약 사용

우리나라의 동의보감을 보아도 회교문화권에서 들어온 약재가 많다. 동의보감에 중앙아시아나 서역에서 유래됐다고 볼 수 있는 약재가 20여개나 실려있다.

그러나 장수하는 사람이 많은 타슈켄트, 사마르칸트, 우루무치 같은 고장에는 약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고 쓰이는 양도 많지 않다. 반 사막지대의 유목민들에게 자주 발생하는 난치성 피부병에 잘 듣는 사아단약의 성분을 물어보아도 가중흑초종 같은 비교적 간단한 약들만 쓰고 있었다.

이 고장 사람들의 설명에 따르면 약을 적게 먹기 때문에 장수한다고 강조한다. 약은 병을 고치는 동시에 독이 될 수 있다. 중국에서 백성들의 건강을 위해 왕이 만들었다는 「황제내경」이나 「신농본초경」을 보아도 약의 의미를 쉽게 알 수 있다.

신농본초경을 보면 약은 상약, 중약, 하약으로 나뉜다. 상약은 오래 먹어도 좋지만 하약은 반드시 병을 치료할 때만 사용해야 한다고 기록돼 있다. 상약은 아마 음식과 경계가 분명치 않은 의식동원이란 차원에서 파악해야할 넓은 의미의 식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서양의 약들은 회교의학의 연금술과 함께 생겨나 화학공업의 발달에 힘입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6·25전만 해도 많은 사람이 매독치료제로 사용했던 특효약 「606호」는 606회의 실험을 거쳐 만들었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그후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많은 약이 생겨나고 다이아진과 페니실린으로 대표되는 화학요법은 대부분의 전염병을 고전적 질병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이런 약들은 놀랄 정도로 약효가 뛰어나지만 부작용도 크다. 약의 부작용으로 생기는 병을 약원병이라고 한다.

오늘날 현대인은 약을 많이 먹기 때문에 각종 질병을 쉽게 치료하지만 오히려 약원병에 걸려 고생하는 경우도 많다. 장수촌에는 약이 없다. 고작 사용하는 약들도 그 고장에서 나는 생약에 불과하다.

장수촌에선 약을 먹지 않아 장수한다고 자랑한다. 현대인도 약을 꼭 필요할 때만 먹고 남용하지 않는다면 장수할 수 있을 것이다.<허정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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