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정지 9개 종금 콜자금 동결 등/하루앞 못보는 즉흥조치 불신 증폭「거대한 댐이 무너지고 있는데 물 새는 구멍만 막고 있다」
단기금융(콜)시장 마비로 경제시스템 전체가 붕괴위기를 맞고 있는데도 정부대응은 「땜질식 봉합」에 그치고 있다. 스스로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정책, 당장 하루이틀후를 내다 보지 못하는 임기응변식 처방이 금융시장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고려증권과 한라그룹의 도산에 이어 종금업계 전체를 지급불능상태로 몰고간 단기금융시장 와해의 주요 원인중 하나는 9개 종금사 영업정지조치후 정부의 미숙한 「뒤처리」에 있다.
9개 종금사가 쓴 콜자금규모는 약 1조1천억원대. 하루짜리 초단기자금을 빌려줬던 은행과 타종금사들은 채권동결조치로 일시에 돈이 잠겼고 이는 전체 콜시장 유동성의 10%이상이 갑자기 「증발」한 결과를 초래했다.
영업정지는 불가피했더라도 시장유동성을 위해 콜자금 만큼은 정부가 어떻게든 일찍 풀었어야 했다. 시중은행 한 자금담당자는 『고객예금은 며칠후 인출해도 상관없을지 모르지만 콜자금은 하루가 급하다』며 『금융기관 콜자금 만큼은 즉각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업정지 종금사의 콜자금 동결조치는 바로 다음날 발생할 시장혼란도 예견치 못한 즉흥적이고 아마추어적 정책행태의 전형이라는게 금융권의 공통된 지적이다.
종금사 결제위기에 대한 자금지원도 주먹구구식이란 비난을 사고 있다. 재경원은 결제불능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되자 4일 마지 못해 외국환평형기금의 원화여유자금(외평콜) 1조8천억원중 6천억원을 방출했다. 그러나 종금권 자금부족규모(1조8천억원)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는 액수인데다 그나마 하루짜리였다.
은행 종금사, 한은까지도 『단기자금시장이 하루이틀새 개선되기 어려운 만큼 정부의 시장안정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보다 많은 금액을 장기간 방출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재경원은 이를 묵살했다. 그러나 이튿날 종금권 미결제액이 2조원을 넘어서자 재경원은 결국 외평콜 만기를 일주일로 연장했다. 한 종금사간부는 『어차피 결과는 같을 것을 처음부터 과감하게 행동했다면 시장은 하루라도 일찍 안정될 수 있었을 것』이라며 『하루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정부의 정책행태로 인해 시장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안에서 자금시장을 담당하는 원화라인과 외평콜을 관리하는 외화라인의 손발이 맞지 않는다는 증거란 해석도 있다.
자금공급원인 은행들이 종금사 콜지원을 기피하는데도 「정부불신」이 깊게 깔려있다. 은행들은 『9개 종금사 영업정지 전날까지만해도 당국이 콜머니를 빌려주라고 해 마지 못해 대줬는데 다음날 곧바로 묶어버렸다』며 『겉다르고 속다른 정부를 어떻게 믿고 종금사에 콜을 추가지원하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재경원은 『종금사 추가영업정지는 없다』고 거듭 강조했지만 2개 은행폐쇄 등 국제통화기금(IMF)과의 이면합의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 상황에서 더이상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반응들이다.
정부가 솔직하고 확고한 의지를 말 아닌 정책으로 확인시켜 주지 않는 한 시장정상화는 불가능할 전망이다.<이성철 기자>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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