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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이외수 “아이 러브 P씨”/입문 1년만에 마니아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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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이외수 “아이 러브 P씨”/입문 1년만에 마니아 변신

입력
1997.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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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머리에 특이한 언행의 소설가/컴퓨터와 담쌓은듯 보이는 그가 청소년 대화방서 인생상담을 하고 사이버언어를 만들어 보급까지/요즘엔 사이버공간의 체험을 소설로 만들려 분주하다장발의 기인소설가 이외수(52)씨가 사이버공간에 나타나 독특한 「행각」을 하고 있어 네티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요즘 PC통신 천리안 가입자들은 대화방부터 찾는다. 사용자 번호(ID)가 OISOO인 사이버공간의 기인 이외수씨를 만나기 위해서이다.

이씨는 천리안 뿐아니라 하이텔(ID:OISOO1)과 유니텔(ID:격외선당)도 단골로 드나드는 PC통신 마니아이다. 「격외선당」은 격식을 따지지 않는 신선이 사는 집이라는 뜻이어서 주인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일부 네티즌은 그의 행색과 컴퓨터가 도무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인지 선입견을 갖기도 한다. 긴 머리, 특이한 언행으로 문단에서 숱한 에피소드를 만들어 낸 기인이기에 사이버공간에서도 무슨 꿍꿍이를 부리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씨의 컴퓨터실력을 알고보면 모두 깜짝놀란다. 보통의 네티즌이 아니라 전문가수준이다. 사이버공간에서 통용되는 그림글자, 일명 「사이버언어」를 만들어 보급할 정도이다. 덕분에 그는 네티즌들에게 사이버언어의 마술사로 유명하다. 천리안에 들어가서 이외수의 ID를 모르면 간첩취급을 받는다는 농담도 생겼다.

이씨는 올해초 펜티엄급 데스크톱PC와 노트북PC를 구입하면서 컴퓨터를 처음 배웠다. PC를 구입한 이유는 건강때문이었다. 20년 이상 엎드려서 글을 쓰는 습관 때문에 허리와 눈이 많이 나빠졌다. 그래서 자세를 고치기 위해 PC를 샀다. 두손의 집게손가락만으로 자판을 두드리는 「독수리타법」으로 소설을 썼다. 글쓰는 속도가 느릴 수 밖에 없었다. 보다못해 둘째아들 진얼(18)군이 『PC통신의 대화방을 이용하면 금방 자판을 익힐 수 있다』고 귀뜸해줬다. 그래서 지난 3월부터 PC통신 문을 두드렸다.

막상 시작하고보니 생각보다 보통 어려운게 아니었다. 사용법도 그렇지만 대화방의 분위기를 몰라서 신세대가 대부분인 네티즌과 어울리기 힘들었다.

PC통신을 시작한 날 혼자 있는 대화방에 네티즌 한명이 불쑥 찾아왔다.

참가자명단에 적힌 이름을 보고 상대는 대뜸 말을 내렸다. 『안녕, 외수야』 원래 그런가보다 싶어 얼른 맞장구쳤다. 『응? 안녕』 이런저런 대화 끝에 네티즌이 물었다. 『난 중학생이야. 넌 몇살이니?』 『응, 난 52세』 『억!』 외마디 비명과 함께 10대는 놀라서 달아났다.

그 후로도 이씨가 나이만 밝히면 네티즌들이 모두 도망갔다. 그제서야 대화방의 분위기가 청소년 중심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상대가 나이를 물으면 이렇게 답했다. 『원래는 52인데 이번 식목일에 물구나무를 심어서 25가 됐단다』 비로소 네티즌들은 재미있는 사람이라며 어울려주었다.

인기작가라는 유명세 때문에 곤욕도 치렀다. 일명 「이외수 확인작업」이 벌어진 것이다. 「진짜냐? 사기치지 마라」, 「등단작품이 뭐냐」, 「대표작을 열거해 봐라」, 「이름을 한문으로 어떻게 쓰느냐」 등등 신분을 알아보기 위한 질문이 한 달 가까이 쏟아진 끝에 「진품」임을 인정받았다.

이씨는 독특한 사이버언어와 대화방에 개설한 「이외수상담실」로 인해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사이버언어는 글자 대신 컴퓨터의 자판 기호들을 조합해서 만든 그림문자이다. 그는 아기코끼리, 잠자리, 짖는 강아지 등 10여종의 사이버글자를 만들었다.

『대화실에서 만난 팬들이 사인을 해달라는 거예요』 마술사가 아닌 이상 상대방 모니터에 들어가 사인해 줄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사인을 대신할 그림문자를 만든 것이다. 이외수의 그림문자는 입소문으로 퍼져 이제 당당한 사이버언어가 됐다. 이씨는 대화방에 가면 다른 네티즌들의 초대도 많이 받지만 스스로 이야기방을 개설한다.

「강물소리 저 홀로 깊어가는 겨울에는」식의 문학적인 표현을 방제로 즐겨 사용한다. 대화방에서 불치병을 앓는 환자에게 재활의지를 심어주기도 하고 자식을 잃은 어머니에게 시를 지어 위로하는 등 인생상담자 역할도 한다. PC통신 대화방이 「이외수의 상담실」이 된 것이다.

간혹 대화방에서 폭언을 일삼는 무례한 네티즌도 만난다. 여러 네티즌이 같이 화를 내 분위기가 험악해지면 그가 나서서 해결한다. 『무식한 귀신은 부적을 몰라보는 법입니다. 화를 내야 소용없지요. 조용히 타이릅니다』

더러 이씨의 말을 「폼잡는 도사의 이야기」로 치부하며 「하늘을 날아보라」는 식의 황당한 주문으로 조롱하는 네티즌도 있다. 『진정한 도사는 원래 하늘을 날지 않습니다. 새한테 미안하니까요. 그건 새나 나비가 할 일입니다』 넉넉한 유머로 받아치면 철없이 굴던 네티즌들은 무안해 하며 슬그머니 사라진다.

PC통신을 하며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한달동안 PC통신을 자그만치 178시간 사용해 해당업체에서 『건강을 위해 지나친 PC통신을 삼가 달라』는 우려석인 권고전화도 받았다.

이씨가 매일 PC통신에 몰두하는 이유는 한가지. 좋은 작품을 위해 작가의 아집, 습관을 버리고 다양한 경험을 쌓기위해서이다. 천리안의 자기소개글에는 「날개를 가진 새는 한나무에 앉아서 꿈꾸지 않는다」고 썼다. 소설가 이외수가 PC통신을 통해 더욱 자유분방해지고 사유의 깊이도 한결 깊어진 것이다.

요즘에는 사이버공간에서 얻은 체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구상중이다. 현실을 허상으로 알고 사이버공간을 실체로 느끼는 네티즌이 주인공이다.

소설을 쓰다 지치면 그림의 세계로 뛰어든다. 이씨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익필을 사용하는 화가이다. 익필은 부드러운 털붓대신 장닭의 꽁지깃으로 만든 깃털붓을 말한다.

깃털은 물이나 먹이 묻지 않고 굴러 떨어지기 때문에 먹물을 찍는 순간 화선지에 옮겨 단숨에 그려야한다. 말 그대로 일필휘지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한 호흡에 그리기 위해 이를 악물고 온 몸의 기를 끌어모아 붓 끝에 집중한다. 그래서 전시회를 한 번 하고나면 양쪽 어금니가 모두 흔들리고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어버린다. 힘들게 그린 작품을 지난달 개설한 인터넷 개인홈페이지(www.cmart.co.kr/oisoo)에 올려놓았다. 여기에는 그림뿐아니라 소설, 사진, 작품해설 등도 실려있다.

그는 『남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모두가 행복한 살기좋은 세상이 된다』며 『소설가라면 당연히 그런 세상을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소설가 이외수는 오늘도 네티즌들의 다양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컴퓨터앞에 앉는다. 선승이 참선하는 심정으로….<최연진 기자 wolfpack@nuri.net>

◎이외수의 사이버언어/어때요?잠자리 같죠

이외수씨가 만든 사이버언어는 두가지이다. 착한 네티즌들과 대화할 때 사용하는 아기코끼리, 잠자리 등 예쁜 언어와 무례한 사람들에게 주는 지네, 송충이 등 징그러운 언어로 대별된다.

▲아기코끼리(@MM∼)

컴퓨터 자판의 숫자 2번위에 있는 기호@가 코끼리머리, 영문 대문자M 이 몸통, 기호∼가 꼬리역할을 한다.

▲아기사자(*MM∼)

숫자 8번위에 있는 기호가 갈기가 덜 자란 아기사자의 머리, 영문 대문자M이 몸통, 기호∼가 꼬리를 나타낸다.

▲짖는 강아지(>mm∼)

마침표위에 있는 기호 >는 강아지의 짖는 입모양, 영문 소문자m은 몸통, 기호∼는 꼬리가 된다.

▲잠자리(:}}―)

기호:는 잠자리의 눈, 기호}}는 날개, 기호―는 꼬리를 표시한다.

▲지네(8HHHH―)

숫자 8번은 머리, 영문 대문자H는 수많은 발이 달린 몸, 기호 ―는 꼬리.

▲차려(ㅣㅣㅣㅣ)

한글 ‘ㅣ’를 이용, 사람들이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다.

▲열중쉬어(ㅅㅅㅅㅅ)

한글 ‘ㅅ’자로 사람들이 다리를 벌리고 선 쉬어 자세를 표현한다.

▲경례(4444)

숫자 ‘4’를 이용, 거수경례를 붙인 팔동작을 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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