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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차례는?(대량부도 사태)

입력
1997.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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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종금→은행→재벌 악순환/부도성역 사라져 공황 치달아/구조조정 차원넘은 “구조파괴”국제통화기금(IMF)의 폭풍속에서 살아남을 금융기관과 재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불사의 금융기관과 재벌이 무차별적으로 쓰러지면서 한국경제는 「구조조정」차원을 넘어 「구조파괴」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대기업들을 차례로 무너뜨리고 금융기관까지 침몰시킨 현재의 대량부도사태는 금융만의 마비도, 기업들만의 위기도 아닌, 경제시스템 자체의 붕괴를 뜻한다. 9개 종금사의 전격적 영업정지조치와 금융기관 추가폐쇄 가능성으로 야기된 단기금융시장의 마비는 종금사 부도위기→여신회수→기업도산→금융기관 부실누적→단기금융시장 경색심화→종금사 도산→은행 폐쇄→재벌그룹 추가도산 등 걷잡을 수 없는 「패닉(공황)」상태로 비화하는 양상이다.

금융제도 정착 이후 첫 금융기관 도산사례인 고려증권 최종부도와 재계서열 12위의 한라그룹 침몰은 그 자체로도 충격적이지만 앞으로 우리 경제가 겪게 될 「IMF공황」의 예고탄이란 점에서 더욱 경악스럽다. 한은 관계자는 『금융이 통제력을 상실한 상황에서 고려증권 및 한라그룹 부도는 향후 대량부도사태의 시작인 듯싶다』고 말했다.

고려증권과 한라그룹의 부도는 단순한 내부부실보다는 금융시스템의 마비에서 비롯됐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은행들의 콜자금 공급중단으로 야기된 고려증권 사태는 금융정상화의 전제조건인 금융기관간 신뢰가 완전파괴됐음을 확인시켜 줬다. 1천7백억원대의 갑작스런 종금사 여신회수와 은행권의 협조융자포기로 벌어진 한라그룹 도산 역시 금융과 기업간엔 냉정한 정글법칙만이 작동하고 있음을 입증했다.

한라그룹 총여신규모는 6조4천7백64억원으로 한보(5조5천9백61억원)보다도 1조원가량 많다. 「폐쇄」까지 논의되는 상황에서 또다시 거액부실을 떠안게된 금융기관들로선 「기업사냥」 나아가 「금융기관사냥」까지 마다치 않을 것 같다. 소문으로 종금사가 어음을 돌리고, 그래도 은행은 기업을 도와줬던 기아사태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상황이다.

IMF의 금융기관폐쇄 및 결산강화 방침으로 대출창구를 막아버린 은행들은 한라그룹에 또다시 3조4백억원대의 부실여신을 물림에 따라 스스로의 존립위기속에 한계기업 대출회수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A은행 고위간부는 『정부에서는 협조요청을 하고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 은행이 종금사에 대한 콜자금지원을 재개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종금권의 상황은 더 절박해졌다. 콜자금 부족규모가 4조원대에 달했던 종금사들은 한라그룹부도로 은행보다도 많은 3조2천억원의 부실여신을 추가로 떠안게 됐다. 은행지원마저 끊어진 종금사들로선 여신회수라는 최후의 자구책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중견상장사인 영진약품도 5일 만기도래한 회사채 50억원을 상환하는 과정에서 자금악화설이 퍼지자 종금사들이 갑자기 60억원의 어음을 돌리기 시작, 6일 결국 최종부도처리되고 말았다.

이런 금융시스템 마비속에서 연말자금고비를 넘길 기업이 몇이나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제2, 제3의 한라사태는 시간문제로 보인다. 현재 금융권에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초대형재벌의 자금악화설까지 나돌고 있다.

내년 이후의 상황은 더 비관적이다. IMF 긴축요구에 따라 통화당국의 「돈줄죄기」가 본격 시작되는데다 금융기관 폐쇄가능성으로 종금, 기업, 그리고 은행으로까지 도미노적 도산사태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경제시스템 관리의 최종책임자인 정부당국은 이미 공신력을 잃은데다 하루후 상황조차 예견치 못하는 땜질식 처방으로 시장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금융계와 재계는 지금 경제구조조정이 시작되기도 전에 구조 자체가 깨질지도 모른다고 우려감에 휩싸이고 있다.<이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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