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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만 죽는 세상/김주영 소설가(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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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만 죽는 세상/김주영 소설가(아침을 열며)

입력
1997.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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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주권이 차압당하고 말았던 12월 3일을 국민들은 제2의 국치일로 말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그런 여론이 설득력을 갖는다면, 1910년 대한제국이 한일합방문서에 치욕적인 조인을 한 날로부터 87년이 흘러간 지금, 우리는 새로운 국치일 하나를 더 만든 못난 나라의 국민이 되고 말았다. 나라의 경제가 이처럼 절망적인 상태의 수렁에까지 곤두박혀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하고, 경제정책의 수립과 운영의 일선에 있지 않았던 대다수의 국민은 날벼락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형국이 되었다. 당장 일용할 양식 몇 됫박이나 찬거리와 옷가지의 오름세나 내림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아온 대다수 국민은 지금 경제주권의 박탈감에서 비롯된 수치심의 한계를 넘어 자괴의 심정에 빠지고 말았다.차마 말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나라꼴이 추락하고만 까닭은 물론 정치와 경제를 도맡아 운용해 온 경제관료들과 대통령의 잘못이다. 그리고 재벌로 일컬어지는 대기업들의 탐욕적이고 무분별한 기업확장과 은행들의 부실대출 누적에 원인이 있었다. 대통령과 경제관료들은 그동안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위기를 왜곡하였거나 알고도 외면해 왔다는 지탄을 모면할 수 없게 되었다. 나같은 서민도 얼추 짐작하고 있었던 나라의 경제사정을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는 분들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진작 처방에 착수하지 못한 굼뜬 대처도 지탄받아 마땅하다. 도대체 지금 나라를 도맡아 다스리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도 분별할 수 없게 된 무중력의 상태를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정치사에 고질병으로 간주되고 있는 정경유착이란 것도 개념정리를 똑바로 해둘 때가 된 것 같다. 우리 서민들이 알고 있는 정경유착의 뜻은, 이권을 노리는 기업과 권력유지를 위해 돈이 필요한 정치인들간의 거래라는 단순논리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기업들이 무분별한 확장이나 자신들끼리의 보증으로 자기 기업의 수효를 늘려가는 탈법과 탐욕을 바라보고 있으면서 방치하는 것도 정경유착의 범주가 아닌가 의심스럽다. 그와 함께 대통령은 지금껏 나라를 다스리는 무게중심을 어디다 둬왔는지가 참으로 묻고 싶은 것 중의 한가지다.

참으로 참담한 것은 제2의 국치일을 만들어낸 책임의 한계와 까닭을 미주알고주알 캐내더라도 그로부터 비롯되는 비분강개의 심정과 절망과 고통을 모두 우리들 서민으로 이름되는 국민들이 감당하고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극명한 사실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우리나라 경제도 바람불고 차가운 구로공단의 가건물 공장에서 밤을 꼬박 지새워 재봉틀을 돌리고 선반을 돌렸던 공원들이 없었다면 성취가 있을 수 없었던 경제였다.

한심한 노릇은 수렁에 빠진 나라경제를 부추기는 방법에 몰두해야 할 대통령선거 입후보자들이 나라경제가 이 꼴이 된 책임의 전가에만 급급하다는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가 짊어져야할 짐이고 책임이란 사실이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입후보까지 한 사람들이라면 가장 원론적인 경제논리나 지금 이 시각 우리가 지녀야할 가치관쯤은 알고 있어야 하겠는데 그것이 보이지 않아 다시한번 안타깝고 실망스럽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가 오늘 이 시간부터 근신하는 자세로 살지 않는다면, 뉴스 카메라 앞에 노출된 범죄자들처럼 윗도리 옷깃을 뒤집어 쓰고 고개를 사타구니에 박아야 하는 치욕과 부끄러움을 극복할 길이 없다. 빚더미 위에 있는 가정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가를 우리는 경험으로 충분히 알고 있다.

빚을 가진 사람이 분수에 넘친 호화스러움을 만끽한다면 그 가정은 필경 패가망신하는 것을 보아왔고, 빚을 얻어 여행을 즐기는 이웃이 있을때 우리는 철면피로 여겨왔다. 우리에게 돈을 빌려 준 채권자가 채무자인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을 탓하려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는 처사다. 그것을 불안해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우리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순발력을 총동원해서 그들에게 다시 한번 우리의 능력을 보여줄 때가 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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