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군림 50년” 이젠 해체의 길/총수중심 지배·경영방식 대수술한국 압축성장의 상징인 재벌이 국제통화기금(IMF)의 집도로 수술대에 올랐다. 선단식 경영과 경제력 집중 등 온갖 비난속에서도 한국경제의 중심적 위치에 있던 재벌이 IMF로부터 「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돼 갖가지 제약을 받게된 것이다.
IMF의 정책권고중 재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항목은 은행을 통한 여신축소와 상호지급보증 폐지, 연결재무제표 작성, 내부자거래 금지, 경영회계의 투명성 제고 등이다. 특히 재벌총수의 독단적인 경영권 행사와 소유지배구조 등 재벌의 근본적인 문제를 사실상 거론, 재벌의 해체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재벌구조의 문제점 해소와 관련, 우선 예상되는 변화는 부실계열사에 대한 정리다. 은행이 민간부문에 대한 여신증가율을 8%수준으로 제한하고 상호지급보증을 없애며 회계장부가 선진국 수준으로 투명하게 되면 부실 계열사는 자연 도태될 수 밖에 없다. 특히 지난 4월기준 30대 재벌의 계열사간 지급보증규모는 64조3,000억원으로 자기자본 70조4,600억원의 91.3%에 이르고 있어 상호지급보증의 해소만으로도 재계의 대수술은 불을 보듯 뻔하다. 당초 정부의 계획으로는 2000년까지 완전히 해소키로 했었다.
기업지배구조의 변화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30대 그룹 평균 8%대인 재벌총수 가족의 지분율과 34%대인 계열사간 지분을 토대로 40∼50개 계열사를 총수 한 사람이 지배하는 「한국식 지배구조」가 재벌들의 무분별한 사업확장으로 연결됐다는 지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영권을 전문경영인에게 넘기고 대주주로만 남아있는 대림이나 미원같은 총수들이 줄을 이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연결재무제표 작성의 의무화는 경영관행의 대개편을 예고한다. 매출 부풀리기와 축소등 분식결산이 불가능하고 부실계열기업에 대한 그룹내 수혈도 원천봉쇄된다. 그동안 부실하더라도 그룹내 건실기업의 자금으로 연명함으로써 그룹이라는 우산 아래에서 덕을 봤으나 이제는 자신의 힘으로만 살아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넘어질 기업들도 한 둘이 아닌 상황이다.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도 재계의 대개편이 일어난다. 은행을 통한 여신조절은 현 위기의 핵심중 하나인 기업들의 과투자 오투자를 상당히 줄이는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벌들은 그동안 추진해온 사업들을 전면 포기하거나 수정할 것으로 예상된다.<이종재 기자>이종재>
◎금융/짝짓기·도태… 빅뱅 초읽기/은행 10여곳·증권사 3∼4곳 “도마위”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의 협상이 타결됨에 따라 금융권에는 거대한 지각변동이 불가피해지게 됐다. 9개 종합금융사의 영업정지조치로 시작된 타율적인 「금융빅뱅」은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특히 외국인의 국내 금융기관 인수·합병(M&A)을 허용키로 하고 외국 금융기관의 현지법인 설립시기를 내년초로 앞당기기로 함에 따라 외국기관의 움직임이 국내 금융빅뱅의 핵심으로 떠오르게 됐다.
은행권의 경우 종금사처럼 당장 영업정지 등 강경한 조치가 내려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3월까지 실사를 거쳐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로 A, B, C등급을 판정하게 되면 일반은행 25개 가운데 많게는 10개 가까이가 M&A대상으로 떠오르고 일부는 영업정지조치를 당하게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영업정지조치가 내려지기 이전이라도 외국계 은행의 인수, 타 은행과의 합병, 계열 금융기관과의 합병 등을 통한 생존 움직임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외국계 은행의 현지법인 및 합작은행 설립이 앞당겨지면서 벌써부터 국제적으로 소매금융에 강점을 갖고 있는 C, H, D, I 등 대규모 은행들의 국내은행 인수설이 난무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지동현 박사도 『외국 금융기관들은 인수에 따른 특별혜택이 주어지지 않는 한 한국경제여건이 호전된 다음에 본격적으로 진출을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증권사 역시 IMF 구조조정의 타깃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증권사들은 95, 96년 연이어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으며 올해도 상반기 적자규모만 3,000억원이 넘고 있어 부실의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유가증권 평가손을 30%만 반영하고 있는 증권사들이 IMF요구대로 100%평가손을 반영하게 되면 적자규모가 1조원을 훨씬 넘게 돼 최소한 3∼4개 증권사가 정리대상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여기에 이미 영업정지조치를 받은 9개 종금사 가운데 상당수는 자체 정상화를 포기, 은행 또는 증권사와의 통폐합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종금사와 계열 금융기관간의 합병이 1차적으로 현실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결국 현재 은행 증권 종금으로 이뤄진 금융권은 대대적인 「짝짓기」와 「도태」바람을 거쳐 대형합병은행(시중은행+시중은행) 합작은행(시중은행+외국은행) 시중은행(시중은행+종금, 시중은행+증권) 투자전문은행(시중은행+증권+종금) 대형증권사(종금+증권) 대형종금사(종금+종금) 등으로 재편될 것으로 전망된다.<김준형 기자>김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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