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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해체요구 정당하다/장상환 경상대 교수·경제학(전문가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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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해체요구 정당하다/장상환 경상대 교수·경제학(전문가 진단)

입력
1997.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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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유착·문어발식 확장 현위기 주범은 재벌/‘경제독재’ 혁파 미룰땐 IMF자금도 무용지물외환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지난 11월21일 IMF에 요청한 긴급 구제금융프로그램이 최종 협상타결을 보았다. 국가가 부도나서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언론은 IMF 구제금융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고 모든 국민이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요란하다. 국가적 위기를 당해서 모든 경제주체들이 다소 고통을 분담해야 할 것이지만, 이러한 위기가 왜 초래되었는가를 분명히 해야 올바른 대응도 가능하다.

정치권에서는 경제위기 예방에 실패한 김영삼 대통령의 국정수행 오류를 집중 공격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정부정책을 결정한 여당이므로 큰 책임이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고, 국민신당의 이인제후보도 여당의 지원으로 경기도지사를 했으니 책임이 있다는 것이며, 국민회의 역시 국정의 방향 결정에 참여했으므로 일정하게라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리고 일각에서는 정부 경제정책 수립과 집행을 보좌해온 경제관료들과 이들과 협력한 경제학자들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인과 학자들도 책임은 있지만 이러한 책임 전가식 태도는 진정한 원인을 가리는 측면이 있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순환적인 경기불황이 아니며 정부가 일시적 경기대책으로 막을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것은 박정희시대부터 30여년간 누적된 모순이 개방경제를 맞이하여 폭발한 것이다.

총체적 경제위기의 주범은 재벌이다. 정치권과 정부는 재벌을 육성지원해온 책임이 있지만 이제는 재벌이 너무 비대하여 정부조차 통제하기 어려워졌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으로 중소기업 부문은 취약해질 수 밖에 없었고, 이로 인한 수출경쟁력 저하와 만성적 수입의존구조로 인해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되었다.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에 의존해 재벌은 과다한 차입으로 문어발식 사업확장만을 추구하다가 개방경제하의 격심한 경쟁에 패배하여 연쇄부도가 났다. 기아의 법정관리 사태도 재벌체제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막대한 부실채권을 떠안은 금융기관은 신용도 저락으로 외환조달난에 직면하게 되었고, 기업의 수익성 악화로 주가가 폭락하고 외국인투자가들이 자본을 철수하자 환율이 폭등하고 마침내 외환위기가 온 것이다.

외환위기에 대해서 외국 언론들도 대부분 재벌체제를 핵심적 원인으로 파악, 보도하고 있다. IMF도 재벌체제와 금융기관의 부실한 경영을 문제삼았고, 이제는 마침내 재벌해체를 요구하고 나섰다. 반면 국내에서는 재벌책임 여론이 대단히 약하다. 이것 역시 재벌의 언론사 직접 경영 또는 광고 등을 통한 간접적 지배에 기인하는 것일 터이다. 이 비상사태 앞에서조차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책임을 회피하며 노동자 대량해고로 연명하려는 재벌의 부도덕한 행태에 경악할 따름이다.

경제위기의 가장 큰 책임이 재벌에게 있다면 책임에 따른 부담도 재벌총수 일족들이 가장 많이 져야 한다. 수많은 종업원과 국민의 경제생활을 무리한 차입으로 몸집 불리기에만 치닫는 소수 재벌총수들에게 맡겨둘 수는 없다. 경제위기의 원인인 재벌경제와 부패한 수구정치의 틀을 근원적으로 혁신하지 않고서는, IMF 구제금융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긴급명령을 통해서 부채상환을 동결하라는 재벌의 요구를 대통령에게 강청하는 정치권의 행태는 1972년 당시에나 통할 수 있었던 시대착오적 대응방식이다.

재벌체제는 경제독재체제이다. 정치적 독재가 종국에는 비능률을 낳듯이 경제독재체제도 총수의 폭주를 견제할 장치가 없기 때문에 비효율을 낳게 된다. 북한의 기아사태도 정치경제적 독재체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재벌체제를 사유재산권 보호와 자유시장경제의 명분으로 옹호할 수는 없다. 일본에서는 전후 재벌들에게 군부와 협력한 전쟁주도 책임을 물어 재벌을 해체했고, 그 결과 치열해진 기업간의 경쟁 위에서 경제구조의 질적 개선으로 미국을 급속히 따라잡는 성과를 거두었다.

IMF의 요구가 아니더라도 한국도 이제는 재벌에게 총체적 경제위기를 초래해 국가를 법정관리로 몰아넣은 책임을 물어 재벌체제를 해체하는 결단을 내려야 할 역사적 순간이 왔다. 다가오는 대통령선거는 국가경제를 법정관리사태로 몰아넣은 책임을 가진 재벌과 아직까지도 그들을 비호하고있는 집권세력에 대해 다수 국민이 심판하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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