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사학자 임종국 선생에 따르면 대한제국은 「멸망할 수 밖에 없는 나라」였다. 당시 벼슬자리는 돈이 있으면 살 수 있어서 일단 그 자리를 산 벼슬아치들은 원금을 되찾기 위해 백성의 주머니를 털었다. 가렴주구에 시달리면서도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백성은 결국 나라의 주인이 바뀌든 말든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아니, 한편으로는 『이 썩은 세상을 확 뒤집어 놓아주기만 하면 누가 되어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팽배했다고 한다. 백성이 정신적으로 받들지 않는 국가의 종말이란 뻔하다.최근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협상에서 IMF대표들에게 질질 끌려가는 우리 정부의 모습을 보며 시중에서는 캉드쉬 IMF총재를 「총독」으로, 김영삼 대통령을 「고종임금」으로 빗대어 부르고 있다. 일제 식민지시대를 벗어난 지 52년만에 새로운 금융식민지시대를 맞았다는 자조에서이다. 조선이라는 나라조차 경영을 못하는 사람들이 대한제국이라는 허황된 간판을 새로 단 것이나, 내실은 없으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들어갔다고 자축나발을 불어댄 것이 비슷하기도 하다.
벼슬아치들의 수준은 더 비슷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번에 업무가 정지된 종금사의 재정상황을 보면 부실여신이 자기자본의 2배를 웃도는 회사가 700억원대의 한은특융을 받았다는데 도대체 정부의 관리감독기능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한심하기 그지없다. 부실금융기관이 도태되도록 미리 손을 썼더라면 외부에서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은 막았을 것 아닌가. 대기업들이 갑자기 넘어지는 것도 평소의 감독기능이 전혀 작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만드는 돈은 결국 세금에서 나오는 국민의 돈인데 벼슬아치들이 아무렇게나 쓰는데서 모든 문제는 출발한다.
더욱 딱한 것은 IMF가 제안한 경제개혁안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게 된 것은 서민이라는 사실이다. 18%대의 고금리를 운용한다고 해도 그 수혜자는 여유자금이 있는 부자들이고 서민은 실업과 임금동결이라는 찬바람을 온몸으로 맞아야 한다. 게다가 검은 돈과 무슨 인연이 있는지 세명의 대통령후보는 모두 금융실명제를 반대하며 부도덕한 부자들 편을 들고있다.
이제라도 정부는 국민의 씀씀이를 줄이라고 겁주기보다는 정책으로 경제가 바로가는 길을 잡아줘야 한다. 부가세를 올리기 전에 세무행정을 바로잡아 누수되고 있는 특권층의 세금을 발굴해내야 한다. 또 교육을 바로잡으면 경제도 잡힌다. 여성생활부가 가계부 특집을 위해 취재하다보니 사교육비 부담이 가계 지출의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구한말에는 나라 주인이 바뀌었지만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전세계를 다니는 요즘은 정말 국민들이 나라를 떠나버리는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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