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교육·단축근무 등 통해 실업자 최소화하고 합의조건 성실히 이행 사회·경제 새틀 계기로정부가 IMF와 협상타결한 프로그램은 앞서 구제금융을 받았던 나라들의 프로그램 내용과 그 골격에 있어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것은 바로 경상수지와 외환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한 초긴축정책이며 부실금융기관에 대한 과감한 정리조치이다. 물론 이는 우리에게 쓴 약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만큼 이제 우리는 쓴 약을 받고 고통스러우나 주어진 조정과정을 거쳐나가는 도리 밖에 없다.
IMF프로그램은 본질적으로 단기적인 총수요 관리정책인 만큼 우리가 향후 1, 2년간 치러 나가야할 비용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부실금융기관 정리와 금리상승으로 인한 투자위축, 기업도산 및 실업증가, 환율과 세율인상에 따른 전반적인 물가상승으로 국민은 심각한 실질소득 감소와 고용불안을 감내해 나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아직 많은 국민들에게 이러한 고통스러운 조정과정이 실감나지 않을지 모르나 멕시코도 이미 이러한 과정을 거쳤으며 태국, 인도네시아도 이러한 과정을 겪고 있다. 우리라고 예외가 되기는 힘들 것이다. 이제 닥쳐올 이러한 상황을 맞아 어떻게 나가야 할 것인가.
첫째 고통분담이다. 우리는 오늘의 상황이 오게된 데 대해 누구의 책임을 따질 필요도 없고 누구를 탓해서도 안된다. 오늘의 상황이 있게 된 것은 지난 10년동안 한국경제 속에서 살아온 모두의 책임이다. 우리 경제는 그동안 거품현상으로 방만한 투자와 소비행태가 지속되었고 이는 기본실력으로 지탱할 수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어차피 조정과정을 거칠 수 밖에 없다.
불행히 IMF의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통해 보다 고통스러운 조정과정을 겪게 되었으나 어차피 실질소득의 감소는 감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지난 약 10년간 근로자 및 가계는 생산성을 웃도는 임금, 자본수익률을 웃도는 이자수입으로 과분한 소득과 부를 누렸으나 그 결과 기업과 금융기관은 부실화했다. 이제 그에 대한 비용을 치러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실업증가와 실질소득 감소, 금리상승은 계층간 갈등을 심화시키고 정치, 사회불안을 가중시킬 것이다. 따라서 정부와 기업은 중견 유휴인력에게 산학협동을 통한 직업재교육을 지원하고 또한 근무시간 단축과 봉급인하와 같은 방법을 통해 가능한한 실업을 줄이고 고통을 분담하는 방법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둘째 IMF와 합의한 내용을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다. 이번에 타결된 프로그램 내용이 반드시 한국경제 구조조정과 활력회복을 위한 최선의 방책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정부가 IMF와 합의한 프로그램과 다른 정책을 시도하거나 또는 정치, 사회적인 압력으로 이를 지키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분명히 인식해야할 것은 오늘날의 상황까지 오게된 것은 바로 그동안 우리 금융기관 및 기업들에 상당한 투자를 해온 외국투자가 및 금융기관들이 정부의 정책대응 및 문제해결 능력에 회의를 갖고 투자를 철수한데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경제를 자유화, 개방화한다면서도 추상적인 표현에 머물고 실제 경제운용은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외국투자자들은 일관성, 투명성의 부족으로 받아들였고 한국경제 진로에 대한 예측불가능으로 해석하였다. IMF프로그램에서의 약속을 어기고 또다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면 그들의 신뢰는 회복되지 않을 것이며 신뢰회복 없이 경제회복은 기대하기 힘들다.
셋째 이번에 IMF 프로그램까지 가게 된 것은 바로 지난 30년간 우리경제를 지탱해온 조직 및 제도, 그리고 정책운용의 관행이 이미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하며 이제야말로 우리 경제, 사회전반에 새로운 제도의 틀을 마련하고 새로운 관행과 질서를 정착시키는 대폭적인 개편을 해나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 경제의 개방화와 더불어 전자·정보기술의 혁명은 국제경쟁과 세계금융시장 환경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급속히 개방되고 통합되어가는 국제금융시장은 각국 정부에 정책운용에 대한 고도의 기술과 규율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경제위기는 소위 우리가 그동안 고집하였던 「한국식 경제운용」「한국식 기업경영」이 새로운 세계 경제환경 하에서 더이상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위기는 중요한 개혁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번 경험을 통해 정부나 민간부문 공히 조직의 정비, 인사제도의 혁신, 일하는 방식의 개선으로 새로운 경제사회 질서를 세우고 다시 우리 경제의 밝은 앞날을 도모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